(50) 투자 설명회 당일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50) 투자 설명회 당일

#1

드디어 투자 설명회 당일. 한국타이어 빌딩 제일 윗층 대강당에 파트너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혼자서 몰래(?) 일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어제서야 알게 된 byh(황보영 변호사). 내게 와서 말했다. “너, 그 동안 왜 내게 이거 준비한다고 말 안했냐? 너, IP에서 도망갈 생각 하는 거 아냐?” 난 둘러댔다. “아, 그게 오용석 대표변호사님이 한번 리서치 해보라고 하셔서...” 내가 주도적으로 이 일을 먼저 준비했다고 말했다가는 경을 칠 거 같았기에...

40명 정도의 파트너 변호사들이 강당에 모였다. 보통 이런 전체 모임을 공지하면 절반 정도 빠지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거의 빠진 사람이 없었다. 닷컴 열풍이 한창일 때라 그런지 어느 정도 기대가 있었던 것 같았다.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매번 지적하는 무서운 선배들을 대상으로 사업 설명회를 한다고 하니 다리가 떨렸다.

#2

강단 위에서 내려다보니 선배들의 표정이 다 제각각이었다.

아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 너,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들어보고 제대로 박살내줄게 라는 심정으로 이글거리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 그냥 아무런 영혼없이 앉아 있는 사람...

나는 준비해 간 PT를 시작했다. 20분 정도 사업에 대한 설명을 하고 질문/답변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설명을 하다 보니 스스로 자가발전을 하면서 탄력을 받았고, 40분을 넘게 PT를 했다. 꽤 많은 수치와 근거를 들이대면서 설명을 했다. 다들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PT를 마치고 질의 응답시간. 사업모델에 대한 질문은 내가 가장 고민을 많이 했기에 아주 쉽게 답변할 수 있었다. “그럼 조 변호사는 이 사업에 올인해서 진행할 거요?”라고 어느 변호사가 물었다. 나는 당연히 이 질문이 나올 거라 예상했고, “네, 저는 당분간 이 사업에 올인할 수밖에 없고요. 외부 전문가들도 영입을 해서 팀을 구성할 생각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때 “조변호사! 여기 질문!”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하... 깐깐하기로 유명한 M&A팀에 한이봉 변호사(RBH)가 손을 들었다. 제일 껄끄러운 질문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죽였다. “거... 투자 한도에 관한 질문인데...”

#3

투자 한도라...

나는 PT를 준비하면서 과연 파트너 변호사 1인당 투자규모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고민을 했다. 일단 1구좌당 500만원으로 설정했는데, 1인당 몇 구좌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까 싶었다. 이 부분은 오용석 변호사(YSO) 님과도 논의를 했었는데, 오 변호사님이나 나나 어느 정도 제한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했다.

사업이 망가질 수도 있는데, 혹시라도 현혹된 변호사들이 많이 투자하면 안 되니. 그래서 1인당 3구좌로 제한을 했다. 그러면 1인당 투자 한도가 1,500만원. 많다면 많다고도 볼 수 있지만 로펌 파트너 변호사로서 1,500만원의 돈은 만에 하나 사업이 망가져서 못 돌려받는다 하더라도 내가 험한 꼴을 당하지는 않겠지 라는 얄팍한 계산도 있었다. 그 투자 한도에 대해 질문하겠다는 건가?

#4

특유의 날카로운 표정으로 한이봉(RBH)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아니 무슨 사회주의 체제도 아니고, 투자규모를 1인당 3구좌로 제한한다는 게 말이 돼?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투자를 해서 많이 수익을 얻을 수도 있도록 해야지, 1인당 3구좌 제한은 이상해. 1인당 투자 구좌 제한 수를 풀어주는 건 안돼?”

잉? 저 선배가 저런 말을 할 줄이야. 그러자 다른 파트너 변호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건 그렇지!’ 한 변호사의 말에 동조했다. 이거 뭐야. 더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있어? 오늘 피티는 그럼 성공인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5

PT가 끝나고 파트너들로부터 개별적으로 투자 희망 신청을 받아서 집계했는데, 거의 5억 원에 육박했다. 대부분 한계치인 3구좌를 다 신청했다. 이 양반들이 의심 많은 변호사 맞나? 나는 덜덜덜 떨렸다.

오용석 변호사님이 방으로 부르셨다. “내 예상보다 많이 모였네? 흠. 파트너들이 5억을 투자한다고 하니 약속대로 태평양에서 매칭펀드로 추가 5억을 더 투자하지. 종잣돈 10억 원으로 시작해 볼까, 그럼?”

이 10억 원이 나중에 로앤비의 설립자본금이 된다. 이렇게 로앤비 프로젝트는 태평양 내 사내 벤처로의 첫 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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