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Oh, Captain! My Captain!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51) Oh, Captain! My Captain!


#1

IP팀에서는 다양한 사건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분쟁은 물론 당시(1998~1999년)만 하더라도 아직 법리가 많이 발전해 있지 않던 ‘부정경쟁방지법’ 사건도 깊이 있게 다뤄봤다. 특히 계약서 검토와 관련해서 byh(황보영) 변호사님의 지도를 많이 받았다. 단순히 문구를 수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계약서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의뢰인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방법론을 실전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내가 그 후로 ‘계약법 전문 변호사’로서의 브랜드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대한변협과 서울변협에서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계약법에 대해 자주 강의를 하게 된 것도 byh 지도의 영향이 컸다.


#2

하지만 byh는 byh였다. 나 이전에 매번 주니어 변호사가 1년을 못 버티고 도망(?)간 이유가 무엇인지 대략 짐작이 갔다.

우선 byh는 일처리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따라서 byh를 보좌하려면 완전 초집중을 해서 따라가야 한다. 또, byh는 아무리 인간적으로 친해졌다 하더라도 일에서 허점이 보이면 아주 살벌하게 야단을 친다. byh 톤이 높고 대구 사투리가 있는 편이라 잘못 들으면 상당히 화가 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byh는 성격이 급해서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화를 내더라도 그건 일에 관한 것이었지 인간적인 면으로는 후배를 많이 배려해 주셨다.


나는 워낙 다른 선배들이 byh가 무섭다고 해서 단단히 마음을 먹어서 그런지 byh가 별로 무섭지 않았다. 야단치는 것도, 그 내용이 모두 수긍할 만한 것들이어서 ‘오히려 이번에 제대로 배운다’는 심정이었다. 감탄할 만한 선배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그 발뒤꿈치나마 따라가 보려 했기에 byh는 내게 참으로 훌륭한 교과서였다.


#3

1999년 연말 즈음, IP팀은 송년회를 가졌다. 특이하게도 한강 유람선을 빌렸다. 유람선에서 송년회 하면 중간에 도망갈 수 없다. 그래서 거기서 하기로 했단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무리 즈음에 IP 대빵님이신 EIH(황의인 변호사)가 참가한 사람을 A, B조로 나누더니 A조 사람들에게 테이블 위에 있는 양초를 들어 불을 붙이라고 했다. 그리고 조명을 끄더니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고마웠던 B조 측 사람에게 가서 양초불을 건네 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B조였다. 중학생도 아니고 이런 오글거리는 이벤트를 하다니... 좀 쑥스러웠다.


A조에 있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는 B조 사람들에게 건너왔다. 나는 멍하니 서서 누가 올까 기다리고 있었다. 어... byh가 내 쪽으로 한발 한발 걸어오고 있다. 설마...? 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byh는 내 앞에 섰다. 그리고는 본인이 들고 있던 양초불을 내게 건넸다. “조변호사, 내가 니 좋아하는 거 알제? 고맙데이. 잘 버텨줘서.”


흑.,, 눈물 날 뻔 했다. 이 사건을 동기들에게 알려주면 아마 다들 놀랠 거다. 천하의 byh가 이런 멘트를 하다니. 그렇게 1999년은 저물어 갔다.


#4

이제, 내가 갑자기 20여 년 전의 태평양 신입시절을 글로 쓰게 된 계기를 밝힐 때가 되었다. 2008년 8월 하순. 나는 그때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문자가 왔다. “황보영 변호사님 별세.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000호”

뭐??? 별세? byh가? 이게 무슨 일? 나는 재빨리 여러 변호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대략 파악해 본 상황은 이랬다.


byh가 가족들과 지방으로 휴가 갔는데, 거기 캠핑장에서 운영하는 렌터카를 타고 어느 행사에 가다가 렌터카 기사의 실수로 차가 전복되어 byh와 가족 몇 분이 생명을 잃으셨다는 거다. 완벽한 렌터카 기사의 과실이란다.


이런 청천벽력이 있나. 급히 삼성서울병원으로 갔다. 태평양의 많은 식구들이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곳에 모여 있었다. 대표변호사님은 많이 우셨는지 눈이 빨갰다.

그렇게, 너무도 황망하게 byh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1964~2008, 향년 45세)


#5

동료들의 충격은 정말 컸다. 나는 오랜 시간 멍한 상태였다.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2023년.

나는 그 이후로도 byh를 자주 떠올렸다. ‘이럴 때 byh라면 어떻게 했을까?’ 언제나 byh는 나의 가늠자였고 롤 모델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 사수가, 내 스승이 byh라고 자주 말하고 다녔다. 얼마나 대단한 분이었는데...


나는 이제 byh가 돌아가실 때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이젠 정말 친구처럼 편하게 농담도 하고 싶은데, 그 분은 안 계신다. 내가 그나마 이렇게 변호사로서 먹고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신 분인데, 그 분께 달리 감사를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내 글을 통해 byh를 소환하고 싶었다. 내 글을 보고 사람들이 ‘황/보/영’을 검색하고, 그 분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었는가를 알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 후배가 선배를 위해 할 수 있는 미약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byh, 황 변호사님!

나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배움으로 이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불꽃처럼 강렬한 빛을 태우고 일찍 생을 마감하신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황 변호사님의 가르침에 누가 되지 않게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변호사로서 살아가겠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누나.

Oh, Captain! My Cap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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