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빅펌의 형사팀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54) 빅펌의 형사팀



#1


빅펌의 변호사들은 다소 기피하는 부서가 몇 군데 있다. 우선은 일반 민사송무팀이 별로 인기가 없고 형사팀도 그러하다.


대신 특정한 전문분야를 지향하는 팀(M&A팀, 금융팀, 국제중재팀, 부동산금융팀)은 선호의 대상이다. 아무래도 더 뾰족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런가 보다.


특히 형사팀의 경우는, 로펌에 바로 입사하는 변호사들이 지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로펌의 형사팀은 전관(검찰 고위직출신)들이 기초를 잡고, 저년차 검사출신들이 주니어 변호사로서 합류하는 형태를 취한다.



#2


그러다보니 로펌 내에서 업무를 진행할 때도 주니어들이 형사사건에 차출될 때는 좀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큰 사건을 수행하다보면 다른 팀 주니어들이 지원도 나가야 하는데, 형사팀으로 지원 나갈 때는 ‘딱히 별로 배울 것도 없는데 가서 고생만 하게 된다’는 선입관이 있다.



민사나 상사사건이 아주 치열한 법리 싸움이 주를 이룬다면, 형사사건은 법리적인 다툼보다는 전관의 힘이나 읍소 등, 비법리적인 영역이 결과를 좌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오해를 했었다. 그러나 막상 형사사건을 해보니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3


빅펌에서 맡게 되는 형사사건은 경제사범 사건이 많고, 단순히 읍소를 해서 선처를 구하는 사건보다는 치열하게 무죄를 다투면서 법리논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형사사건은 의뢰인의 멘탈을 케어하는 부분까지 담당해야 한다.



형사팀 선배 박정호 변호사(JHP)가 설명해 준 내용을 소개한다.



“조변, 형사사건 우습게 보지 말라구. 변호사 업무의 진짜 꽃은 형사파트야.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걸 배워보라구.”


“네, 알겠습니다.”



“특히 우리 로펌은 재벌그룹 오너 사건들을 많이 하거든. 봐봐. 만약 내일 아침에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진행할 예정이야. 그러면 오늘 밤새 그 오너와 법무팀 사람들과 같이 방어논리를 구성하고 자료를 만들거든. 밤새 재벌그룹 오너와 같이 그 사람의 구속을 막기 위해 준비를 하는 거야. 새벽 3시쯤 넘어가면 이제 인생 이야기가 흘러 나와. 같이 담배 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리고 만약 다음 날 구속영장 기각시켜봐. 그 오너하고는 인간적으로 완전 친해지는 거야.”


아... 그럴 수 있겠네.



#4


“50억 짜리 민사사건을 한다고 치자. 큰 기업에서 50억이 뭐 큰 돈이겠어? 그런 사건을 변호사가 처리한다고 오너나 CEO가 직접 변호사랑 만나서 회의하거나 그런 일은 별로 없어. 어차피 법무팀이 다 알아서 하지. 하지만 형사사건은 달라. 당장 그 오너나 CEO의 구속여부나 형사처벌이 걸려 있으므로 본인들의 관심은 아주 높거든. 그리고 가장 약해져 있을 때란 말야.”



“평소 다른 사람 앞에서 어깨에 힘만 주던 사람들이 제일 약해져 있을 때 우리 형사 변호사들을 만난다구. 그러니까 우린 어떻게 해야겠어? 법적으로 조언도 하지만 같이 고민해 주고 동지애를 보여주면 그 사람들은 그 변호사를 잊지 못한다구.“



“우리 로펌이 H나 S그룹 일 많이 하지?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오너들 형사사건에서 담당 선배 변호사들이 정말 케어를 잘 했거든. 그리고 결과도 괜찮았고. 그래서 오너가 우릴 마음에 들어했던 거야. 그러니 일반 민사사건들 굵직한 거 있으면 법무팀은 우리에게 사건을 주지. 왜냐? 혹시라도 결과가 안 좋게 나와도 ‘태평양이 처리한 건입니다’라고 하면 오너에게 큰 질책을 받지 않거든.”



#5


나는 주니어 때 형사팀에 차출되어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큰 사건을 여러 건 지원했다. 그리고 내가 자원해서 나서서 구치소 접견도 가고 의뢰인들과 늦은 시간까지 회의하면서 의뢰인들의 불안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자 어떻게 불안한 의뢰인들을 대해야 하는지 요령도 생겼다.



정말 치열하게 싸워서 무죄 선고를 들을 때의 그 짜릿함은 변호사 생활에서 잊지 못할 승리감을 맛보게 해 주었다. 형사 사건이 변호사 생활의 꽃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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