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머피의 법칙 1편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56) 머피의 법칙 1편


#1


변호사들이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서면작업 중 하나가 바로 ‘상고이유서 작성’. 2심 재판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며 3심(대법원)에 그 이유를 상세히 기재하는 서면이다. 1, 2심은 법정에서 재판을 하지만 3심은 오로지 상고이유서라는 서면만 가지고 청구의 옳고 그름을 다툰다. 따라서 속칭 ‘뼈를 갈아 넣어서 작성하는 서면’이 상고이유서다.


나의 첫 번째 상고이유서 사건은 여러모로 오랫동안 기억될 만 하다.



#2


“조 변호사, 상고이유서 처음이지? 형사건인데, 1심에선 무죄가 나왔는데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혀 법정 구속된 건이야. 3심을 우리 사무소에 위임했는데, 같이 한 번 해보자.”


나의 사수 이형석 변호사(HSL)가 형사건 기록을 하나 줬다.


“조 변호사, 불변기일 잘 체크하고.”


불변기일. 변하지 않는 기일? 쉽게 말해서 소송을 진행하면서 반드시 지키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날짜. 예를 들어 상고이유서의 경우 대법원으로부터 소송기록통지서(당신의 기록이 고등법원에서 우리 대법원으로 넘어 왔어요!)를 받은 날로부터 20일 내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날짜를 짚어보니 9. 20.(금)이 마감일이었다.


“이 변호사님, 9. 20.이 상고이유서 마감일이니 제가 9.17.(화)까지 초안을 작성해서 드리고 변호사님 수정지시 받아서 마무리하면 어떨까요?”


HSL은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그렇게 미리 미래 내게 주면 나야 좋지. 일 좀 하네? 이제?”



#3


어느 CEO의 업무상 배임사건이었는데, 재판 기록 중 회계자료가 특히 많았다. 나는 유죄를 선고한 2심 판결에 문제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충분히 무죄를 주장할 만한 사건이었다.


선배들이 그랬다. 상고심(3심)에서 파기판결(2심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선고)을 받으면 변호사로서는 특히 보람차다고.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나는 전투욕에 불타서 뚫어져라 기록을 검토하고 서면을 작성해 나갔다.



#4


약속대로 상고이유서 마감일(9. 20.)보다 앞선 9. 17.에 상고이유서 초안을 HSL에게 보고했다. HSL은 그 특유의 예리함으로 내 서면을 분석했다.


“잘 했어. 몇 가지 보완할 점이 있어. 내가 체크해놓았으니 그거 보완해서 제출합시다.”


나는 HSL이 포스트 잇을 붙여 놓은 곳을 보니 그 지적사항까지 반영하면 진짜 탄탄한 상고이유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고이유서 보완작업에는 3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될 것 같았다. 나는 9. 19.에 마무리를 하려고 했다.



#5


그런데 9. 19.에 갑자기 대표변호사님이 날 찾으셨다. 본인 조카가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는데 급한 자문건이 생겨서 그나마 인터넷에 경험이 있는 나에게 자문을 구하신 것. 다른 선배 요청이라면 ‘제가 상고이유서를 마무리해야 해서...’라고 말하고 양해를 구할 텐데 대표변호사님이 특별히 찾으시는 상황이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좋다. 어차피 내일이 마감일이니 오늘 밤 늦게부터 시작하면 마무리 지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상담에 들어갔다.


아.. 그런데 대표변호사님 조카는 도저히 말을 중간에 끊을 수 없을 정도로 다변(多辯)이었다. 상담 중간에 본인의 신세한탄까지 하는 통에 저녁 식사 시간을 훌쩍 넘어서야 상담이 끝났다. 그리 급한 일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상담을 마쳤다. 밤에 상고이유서를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진이 빠져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내일 하지 뭐!’



#6


드디어 상고이유서 마감일인 9. 20.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각 잡고 자리에 앉아 상고이유서 마감을 위해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젯밤부터 잇몸이 너무 아팠다. 원래 좀 상태가 안 좋았는데 특히 신경을 쓰면 통증이 심했다. 완전 초집중 상태로 상고이유서를 마감해야 하는데 잇몸 통증이 계속 거슬렸다. 마침 우리 사무실 지하에 치과가 있어서 그리로 갔다.


치과에 도착하니, 예약이 밀려서 30분 이상 기다려야했다. 마음이 초조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치과 의사가 잇몸을 살펴보더니, 염증이 심하다며 치료를 시작하였다. 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치료실 문이 벌컥 열렸다. 한 간호사가 달려 들어왔다. “"선생님! 빨리 와주세요! 7호실 환자가 혈압이 너무 떨어지면서 의식을 잃었어요!” 치과 의사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나에게 사과하며 급히 치료실을 나갔다.



#7


나는 혼자 치료실에 남겨졌다. 답답한 마음에 눈을 감고 기다렸다. 얼마 후, 간호사가 들어왔다. 환자분이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져 큰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고, 의사도 일단 응급실로 따라갔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죄송하다고 하셨어요. 다음에 다시 오세요."


나는 억울했지만 다른 환자가 응급상황이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치과에서 꽤 많은 시간을 써버렸다. 시간을 보니 12:30. 에구 에구 결국 오후에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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