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특별한 만남들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58) 특별한 만남들


#1


이재식(JSL) 대표변호사님이 찾으셔서 회의실로 갔다.


“조 변호사, 인사드리게. 우리 고문기업 김성수 이사님인데...”


나는 인사를 드렸고 명함을 주고 받았다. 회사 이름이 ‘경농’. 익숙했다. 농약 제조하는 큰 회사 아닌가.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항상 ‘경농’ 마크가 있는 농약 포대를 보았었다. 나는 괜히 친한 척 한다고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 온 브랜드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아주 반가워했다. 나는 다시 결정적 한방을 날렸다.


“저 고등학교 때 선택과목으로 농업 들었습니다.”


그러자 김 이사는 깜짝 놀랐다. “아, 그래요? 허허. 제가 로펌에서 변호사님을 많이 만났는데, 농업을 선택과목으로 했다는 분은 처음 뵙습니다.”


나의 이러한 ‘친농적(親農的) 멘트’에 이재식 대표님은 아주 흡족해하셨다. 그 후 나는 꽤 오랫동안 경농의 담당변호사로서 농약사업을 지키는 많은 일을 했었다.


#2


황보영(byh) 변호사가 회의실로 건너 오란다. 어떤 여성분이 같이 앉아 있었다.


“조 변호사, 이 분은 만화가 이재학 화백님의 따님이신데...”


이재학? 그 이 재 학? 무협만화의 대부?


나는 “추혼십삼절, 추공을 그리신 그 분 말씀인가요?”라고 했더니 그 여성분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 “아니, 변호사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당연히 알죠. 제 고시공부 시절에 유일한 낙이 만화방 가서 만화책 읽는 거였는데, 무협쪽은 이재학 선생님의 만화가 최고였지요. 무협의 세계를 떠돌다 보면 고시공부의 시름도 잊고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선생님은 건강하신지요?”


그러자 그 여성분이 말했다. “1996년에 돌아가셨어요. 제가 미국에 사는데, 저작권 관련해서 제가 관리를 해야 해서요.”


아 돌아가셨구나. 내가 신나게 이재학 선생님의 만화에 대해서 아는 체를 하니 그 따님도 아버지 생각이 난다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나의 이 ‘무협친화적인 멘트’에 byh는 아주 흡족해 했다.


추공.jpg


#3


또 어느 날 황보영(byh) 변호사의 호출. “조 변호사, 인사드려. Sony의 박 이사님인데...”


아, 그러고 보니 책상 위에 낯익은 물체가 놓여 있었다. 저것은 플레이스테이션!!! 당시(1998~1999년)에는 우리나라에 플레이스테이션이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았다. 나는 용산에 가서 보따리 장사들이 갖고 온(병행수입) 플레이스테이션을 샀다. 게임 CD를 구해서 집에서 쉴 때 레이싱게임, 파이팅게임을 즐겨 했었다.


“조 변호사는 잘 모르겠지만, 이게 게임기인데...”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내가 플레이스테이션 매니아임을 밝혔다. Sony 박 이사님이 아주 반가워했다. 사건 설명을 하는데 내가 아주 빨리 이해를 하니 byh는 아주 흡족해 했다.


게임을 좋아했던 것이 업무에 도움이 되네. 허 참.


#4


황보영(byh) 변호사가 나를 부르더니 책 한 무더기를 가리켰다. “조변, 저작권 침해 관련해서 검토해 볼 사건인데, 이 책과 이 만화책의 내용을 서로 비교해 봐야 해. 다음 주 월요일까지 의견을 주기로 했어. 빨리 검토해봐.”


보니 만화책은 허영만 화백의 “아스팔트 사나이” 10권이었고, 나머지 책은 에세이 인데 제목이 ‘사하라**‘였다. 금요일 오후에 사건을 주고서 월요일 오전까지 검토하라니. 주말에 일하라는 말씀인데...


어차피 주말에 나와서 일하는 것이 당시는 습관화되어 있으니. 나는 일요일 오후에 집중적으로 두 책을 비교했다. 만화책을 먼저 읽어나갔다. 만화방에서 여유롭게 보는 게 아니라 일 때문에 집중을 해서 보니 새로운 경험이었다. 역시 만화는 허영만 샘이다. 그런데 어딘가 허전햤다. 그렇지. 만화책에는 새우깡이지. 편의점 가서 새우깡 사갖고 와서는 책상에 다리 올리고 아주 편한 자세로 만화책을 정독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누구지? 헉. 김인섭(ISK) 왕 대표변호사님이다.


선배들이 해 준 말이 떠올랐다. “ISK는 주말에 한 번씩 순찰을 하시지. 그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들키면 흐흐 점수 따는 거지.”


어? 나 일하고 있는 건데. 그런데 당시 내 포즈는, 책상에 다리 올리고 있고, 책상 위에는 만화책이 널부러져 있고, 나는 새우깡 까먹으며 만화보고 있고. 딱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안녕하십니까. 대표변호사님. 저... 저는 지금...”라고 말하는데, 쓩 하고 문을 닫으시고는 사라지셨다. 하... 난감했다. 그 뒤로는 만화책의 내용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스팔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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