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순혈주의를 벗어나다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59) 순혈주의를 벗어나다



#1


오랜만의 동기 모임. 정 변호사가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서울 모법원의 어떤 판사가 태평양에 들어오려다 거부당했다면서?”


“응, 상당히 실력 있는 판사였는데 집행부에서 거절했다더라.”


“그 이유가 뭐래?”


소식통 송 변호사가 취합한 정보를 털어놓았다.



“원래 우리 태평양은 사법연수원에서 바로 들어오는 사람만 뽑는 전통이 있잖아. 법원이나 검찰에 있다가 뒤늦게 오는 사람은 받지 않는다는 주의가 있어.”


“그래? 난 그런 얘긴 못 들었는데”



“우리 기수만 하더라도 전부 사법연수원 출신이잖아. 이정훈(JHL) 대표변호사님이 전에 말씀하시는 거 들었어. 현직을 거치면 뽑지 않는 게 태평양의 원칙이라고. 태평양에서 일하려면 사법연수원 마치고 바로 와야 한다 라고 하시더만.”


“뭐, 전관예우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한다, 그런 건가?”


#2


그 당시(1997~1998년)만 하더라도 변호사는 현직(판사, 검사)을 어느 정도 하다가 최소한 부장자리를 달고 나서 옷 벗고 시작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태평양 법무법인의 설립자들은 아예 처음부터 로펌에 투신하겠다는 사람만 받아주겠다는 원칙을 가진 것이었다. 내가 입사한 이후에도 법원이나 검찰 쪽에서 근무하던 전관들이 태평양에 노크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이런 태평양의 방침이 소속원들에게 ‘우리는 현직에 갈 수 있었지만 과감히 그 기회를 포기하고 로펌에 들어왔다’라는 자부심을 심어줬다.


하지만 이러한 태평양의 순혈주의(純血主義)는 안팎으로 비판을 받게 되었다.



#3


우선 외부에서 태평양에 들어오려는 현직들의 불만의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태평양은 너무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힌 거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그런데 더 큰 우려는 태평양 내부에서도 제기되었다.


특히 태평양 송무팀 변호사들은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우리도 전관들을 좀 모셔와야 해. 김앤장이나 세종의 경우 전관들이 전면에 나서서 법원 재판을 진행하는데, 아무래도 재판부와의 소통도 원활한 것 같고, 법원의 심리를 가장 잘 아니까 훨씬 진행이 스무스한 거 같아.”



“솔직히 우리 재래종(원래부터 태평양에서 시작한 변호사들)들의 강점도 분명 있지만, 사건 기록을 볼 때 판사의 시각에서 보는 것도 분명 필요해. 승소가 최고의 덕목이 되어야 하잖아. 법원에서 신망 있는 분들 중에 우리랑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분들은 모셔오는 게 맞다고 봐.”


아무래도 법원 재판을 많이 하는 송무팀은 경험 있는 법관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현실적인 갈증이 있었다.


#4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태평양 집행부는 결단을 내렸다. 현직을 거친 사람을 영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변경하기로 한 것. 이정훈(JHL) 대표변호사는 1999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마치고 단독 개업을 하려던 이종욱(JWL) 전 판사를 태평양의 공동대표로 영입하기로 했다. 송무팀 변호사들은 대체로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자문팀 변호사들은 태평양의 순수함이 훼손된다는 점에서 강한 반대의견을 냈다. 이정훈 대표변호사님은 “몸집이 커지면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 것”이라며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변호사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종욱 변호사께서 태평양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5


이종욱 변호사님은 법원에서도 워낙 신망과 실력이 높던 분이라, 그 분이 태평양으로 오신다는 소식은 법원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과연 판사 출신 변호사가 로펌에서 어떤 식으로 리더십을 발휘할지 태평양 구성원들은 모두 궁금해 했는데, 이종욱 변호사님은 본인의 실력을 십분 발휘했다. 송무팀의 승소율이 급격히 올라가는 결과를 낳았다. 더욱이 이종욱 변호사님 이후 법원과 검찰 출신의 내로라 하는 분들이 태평양에 영입의사를 밝혀온 것이다.


#6


이종욱 변호사님은 가히 태평양의 제2의 발전을 이끄신 분으로 평가받는다. 그 이후 2001년 또 다른 유명한 판사 출신인 강용현(YHK) 변호사님이 태평양에 오셨고, 강변호사님은 그 후 오랫동안 태평양 송무팀의 기둥이 되신 분이다.


이로써 태평양은 순혈주의를 벗어나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갖춘 전문가들을 포용하며 새로운 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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