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로앤비 프로젝트, 시동을 걸다.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60) 로앤비 프로젝트, 시동을 걸다.

#1

2000년 2월경.

내가 태평양에서 파트너 변호사들을 앞에 두고 투자유치 설명회를 했고, 헛똑똑이(?)인 여러 선배들이 앞 다퉈 투자를 결정해 준 바람에 총 10억 원(선배들 5억 원, 태평양 5억 원)의 시드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바로 회사를 설립하지는 않았고 인큐베이팅 기간을 거치기로 했다.

오용석(YSO) 대표변호사님은 “조변, 일단 사내벤처 형태로 시작해 보자. 조변이 발제한 것이니까 조변이 총대를 메고 시작해 보지.”라고 주문하셨다. 다만 내가 아직 어린(!) 관계로 사업 진행에 대한 전반적인 조언을 주실 분으로 표인수(ISP) 변호사님을 추천해주셨다.

#2

표인수 변호사는 쟁쟁한 커리어를 가진 분이었다. 일찍이 행정부에 들어가서 경제기획원 및 상공부 공무원, 대통령비서실 및 상공부 서기관, 통상산업무 아주통상 1과장을 거치면서 경제통으로서의 전문성을 키워왔다. 그런 경력이 있기에 오 대표님이 사고뭉치 조변호사를 잘 감시하라는 임무를 내리신 듯.

표 변호사는 젠틀맨 그 자체이신 분이다. 항상 웃는 인상으로 내가 사업 초기에 놓칠 수 있는 부분을 하나 하나씩 짚어 주셨다. 그리고 태평양 집행부에 부탁해야 할 일들은 본인이 맡아서 짐을 져 주기도 하셨다.

#3

일단 사내벤처로서 최소한의 독립공간이 필요했다. 태평양 12층 한 귀퉁이에 책상 5개 정도 놓고 그곳에 임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앞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경영진 구성도 필요하고, 직원도 필요했다. 오용석 대표변호사님이 내게 ‘아주 특이한 사람’ 한 명을 소개해 준다고 하셨다. 누구?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사람이 안기순(KSA) 법무관이다. 안 법무관은 법무관 3년차(말년차)였는데 태평양 입사 컨펌을 받은 상황이었다. 소문을 들어보니 안 법무관은 딱 천재과였다. 변호사인데 취미로 배운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수준급이라고 했다. 이미 대법원의 판례를 DB화하는 일에도 관여해서 로앤비 프로젝트에는 딱인 사람이었다. 나의 대학 1년 후배였다. 사실 나는 비즈니스 컨셉만 갖고 있을 뿐이었지,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DB와 프로그래밍 전문가가 필요했는데, 법률과 판례까지 이해하는 프로그래밍 전문가를 만났으니 안성맞춤이었다.

#4

다만 걱정은 안 법무관은 원래 태평양 변호사로 입사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로앤비 프로젝트에 투입되면 변호사 생활은 당장은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양다리를 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보였다. 나야 이미 변호사 생활 맛을 본 상태(4년 정도)에서 로앤비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었지만 이제 막 법조인 생활을 시작하는 안 법무관에게는 로앤비 프로젝트 투입이 모험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점 하나. 안 법무관은 무조건 로앤비 프로젝트에 올인하겠단다. 이거 원, 나보다 더 성급한 사람이 있나 싶었다. 나는 선배로서 ‘로앤비 프로젝트도 좋지만 초반에 조금 도와주고 태평양에 정식으로 입사해서는 변호사로서 경험을 쌓아가는 게 본인에게 좋겠다’라고 조언했는데, 안 법무관의 로앤비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은 나보다 더 컸다. 같이 앉아서 로앤비 사이트 계획을 짜는데, 역시 고수는 고수였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구성을 다 갈아 엎어야했다. 아, 나의 허접한 사업구상만으로 투자를 결정한 우리 선배들은 뭔가....

#5

어느 날 오용석(YSO) 변호사님의 호출.

“조변, 조변은 아직 젊으니 사장하긴 좀 그래. 사장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아. 네... 사장은 ...그냥 직위에 상관 없이 로앤비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죠.”

“그래서 말인데 CEO는 내가 외부에서 초빙하려고 하네. 두 번 정도 만난 분이 계신데 말야.”

“아, 그러셨어요. 그 분이 누구신지...”

“응, 이해완 판사라고. 법원에서는 정보화 법관으로 유명한 분이야. 법률 사이트(sol)를 운영하고 있고. 내가 우리 로앤비 프로젝트를 말했더니 아주 큰 관심을 보이더라구.”

우와, 오 변호사님의 추진력도 대단하시네.

이렇게 한 명씩 차근 차근 로앤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나는 큰 꿈을 꾸었다. 대박의 꿈을. 하지만 그것이 엄청난 시련의 시작이 될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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