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61) 로앤비, 도원결의
#1
2000년 1월 태평양 내에서 사내벤처 형식으로 ‘로앤비 사업부’가 발족했다. 나는 12층 내 조그만 공간을 부여받아 업무를 시작했다. 일단 직원부터 뽑아야 했다. 당시 나는 아직 변호사 업무도 동시에 해야 했다. 오전부터 오후 4시까지는 3층 내 사무실에서 변호사 업무를 하고, 그 이후에는 12층으로 올라가 로앤비 관련 업무를 봤다. 내가 사내벤처를 한다고 변호사 업무를 줄여주지는 않았다. 나 역시 로앤비 핑계로 업무에서 열외 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변호사 일 하기 싫어 사업하려고 설친다’는 말을 들을까봐 신경 쓰였다.
#2
구인 공고를 내서 지원자들을 받아 면접부터 진행했다. 내가 누군가를 면접해 보는 일은 처음이었다. 태평양에서 고문격으로 나를 지도하라고 지정해 준 표인수(ISP) 변호사와 같이 면접을 진행했다. 로앤비에 지원한 사람들은 대부분 법과대학 졸업생이거나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구인공고에 로앤비에 대한 설명을 한다고 했지만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서비스였기에 지원한 사람들은 대강의 감(感)만 가진 상태에서, 그래도 큰 법무법인과 관련 있는 곳이니 사기는 치지 않겠지 라는 생각에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지원한 듯 했다.
#3
나는 구인자들에게 우리 서비스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중간에 표인수 변호사가 내게 말했다. “조 변호사. 우리가 면접 당하는 거 같어. 지원자 말을 많이 들어야지 우리 사업 소개를 훨씬 많이 하고 있잖아?” 헐... 그랬네. 우리 서비스가 아직 실체가 없으니 불안한 마음에 그랬나 보다.
하여튼 경영자가 이렇게 열심히 열정적으로 사업설명을 한 덕(?)에 아주 유능한 지원자 3명을 뽑기로 결정했다(나중에 직원은 7명까지 늘어나는데, 나중에 그 중에서 4명이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검사, 변호사가 된다).
#4
태평양 선배들은 날 볼 때마다 “사업 잘 돼가? 우리가 투자한 돈은 언제 떠블이 되냐?”면서 나를 다그쳤다. 아이구... 아직 법인 설립도 안했는데 떠블이라뇨? 이 선배들, 악성 투자자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얼른 조직을 세팅하고 바로 사이트 구축에 들어가야 한다. 안기순 법무관과 만나서 사이트에 대한 전반적인 체계는 잡았는데, 외주 업체도 정해야 하고. 무엇보다 CEO가 정해져야 한다. 오용석 변호사(YSO)님이 로앤비 CEO 후보로 이해완 판사를 만나고 계신다고 했는데. 그 결과가 궁금했다.
#5
“안녕하세요, 조 변호사님. 반갑습니다. 이해완입니다.”
2000년 7월경 나는 오용석 변호사님 소개로 이해완 판사를 처음 만났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이해완 판사에 대한 뒷조사(!)는 마친 상태였다. 첫 인상은 온화한 표정과 다정한 목소리 톤이 마치 목사님 같았다.
“태평양에서 이런 일을 한다는 말씀을 오 변호사님께 전해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건 정말 제가 꿈꾸던 일이었습니다. 판사로서 제 역량을 다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판사는 저 말고도 훌륭한 분들이 많지요. 로앤비 이 일은 제가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판사 생활 정리하고 로앤비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아. 이미 마음을 굳히셨구나. 아직 실체도 없는 로앤비에 투신하기 위해 판사직을 그만 두신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나의 제안이 계속 나비효과를 내고 있음에 긴장이 되었다.
#6
2000년 8월, 이해완 판사는 법관직을 사직하고 태평양에 조인했다. 더 정확히는 태평양 내 사내 벤처인 ‘로앤비’에 들어온 것. 이해완 판사는 법원 내에서도 정보화 법관으로 유명했기에 전도가 탄탄했는데 법무법인으로 갑자기 나간다고 하니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전관으로서 송무를 하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법률 인터넷 사업을 한다고 나간다니. 이 과정에서 ‘태평양이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모양이네’라는 소문이 법조계에서 퍼지는 효과가 있었다. 이해완 CEO의 영입과 함께 로앤비는 우리의 꿈을 담은 사이트를 만드는 작업에 돌입할 수 있었다. 이미 전문프로그래머 수준인 안기순 법무관과 정보화 법관인 이해완 CEO가 힘을 합치니, 적어도 법 관련 사이트로는 국내 최강의 결과물이 나올 것이 확실해 보였다. 아, 이렇게 하나 둘씩 조각이 맞춰지는구나. 2000년 여름 그 당시 나는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