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63) 사이트 오픈만 하면 게임 끝일 줄 알았는데
#1
2001년 2월 6일, 로앤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내걸었던 슬로건이 ‘법에 관한 모든 해답, 로앤비’였다. 로앤비는 수많은 컨텐츠 뭉치들을 씨줄 날줄로 엮은 컨텐츠 중심 사이트라 그 뒷단의 구조는 상당히 무겁고 정교했다. 적어도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인터넷 서비스인지라 로앤비 경영진은 로앤비의 존재가 태평양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히 컸다.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로앤비가 강조했던 몇 가지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그때까지의 사이버로펌들은 온라인 상담과 변호사와의 ‘연결’에 주력해 왔다면, 로앤비는 법조인과 기업(법무팀)을 주고객으로 삼아 다양하고 질 높은 법률정보를 알기 쉽게 제공하고자 했다.
둘째, 종합법률정보검색 서비스는 당시 시행 중인 3천 5백여개의 법령과 하급심을 포함한 10만여 개의 판례전문정보, 24권의 주석서, 9백여 개의 법률서식, 법률뉴스 등을 제공해 단일 법률정보검색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셋째, 생활법률 및 기업법무 질의 · 응답 모음은 3천여 개에 달했는데, 이 내용은 변호사와 전문연구요원들이 계속 업데이트해 나가려는 계획이다.
#2
사이트 오픈 때 뭔가 이슈가 될 만한 이벤트를 고민하다 생각해 낸 것이 ‘무료 소송 이벤트’였다. 비용문제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소송비용과 법적 절차를 도와주는 '무료 법률소송 이벤트'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로앤비가 컨텐츠 사이트이다 보니 막상 사이트를 써 보기 전에는 그 가치를 알 수가 없을 것 같아 우선 일반인들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특정한 조건’에 해당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변호사 보수를 지급해 주든가 아니면 변호사가 직접 사건을 수행해 주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 이벤트는 처음에 시작할 때 우려가 많았다. 과연 어떤 사건들을 선별할 것이며, 그 비용을 다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마케팅을 담당한 나로서는 “일단 우리가 지원해 줄 만한 소송이 있으면 그건 제가 담당하죠”라고 제안했다. 어차피 태평양에서 소송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습득한 상황이라, 굳이 쌩돈(!)을 들이지 않고 내가 노력봉사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이 이벤트는 우려와는 달리 적정한 수준에서 의뢰가 들어왔고, 내가 다 처리할 수 있는 사건들이어서 큰 무리 없이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3
나는 수시로 로앤비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용을 점검했다. 쓸수록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와. 이런 서비스가 나오다니. 우리가 만들었지만 진짜 잘했다. 이해완 CEO와 안기순 변호사의 극강의 디테일이 사이트 곳곳에 묻어 있었다. 로앤비 하나만 있으면 법률업무에 진짜 큰 힘이 되겠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사이트도 오픈했으니 유료 가입자가 팍팍 늘 것이라 예상했다.
#4
그런데... 사이트가 오픈을 하고 몇 몇 언론에서 우리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화해 주었는데... 그것뿐이었다. 사이트 오픈 전과 딱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화를 엄청 많이 받았다. 그 전화는 대부분 신설 회사에게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정수기, 인터넷전화, 명함, 업무 ERP 등)를 도입하라는 세일즈 전화였다.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가서 과연 오늘 몇 명의 유료가입이 되었는지 살펴보는데, 감감 무소식이었다. 가입 프로세스에 문제가 있나 싶어 내가 내 개인카드로 유료 회원 가입을 시도해 보았다. 잘만 가입이 되었다. 이로써 로앤비 관리자 페이지상 최초 유료 고객은 나였다. 이런 날이 하루 이틀 계속되었다. 현기증이 났다. 로앤비 경영진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실망감을 느꼈다. 서로 눈치만 봤다.
#5
‘아니, 이렇게 좋은 서비스를 왜 사람들이 쓰지 않는 거지?’
답은 뻔했다. ‘좋은 서비스든 뭐든 사람들이 알아야 쓸 거잖아? 신문에 기사 몇 개 났다고 사람들이 바로 알고 쓰냐? 그것도 유료서비스를?’
그렇다. 사람들에게 알리고 팔아야 했다. 로앤비의 마케팅 이사는 누구? 나다. 최초 설립 자본금 10억 원이 야금 야금 없어지고 있었다. 개발비, 인건비, 기타 부대 비용으로... 매출이 계속 이 지경이라면 자본금이 거덜 날 시점도 머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2001년 2~3월) 뜨거웠던 닷컴 열풍이 점점 사그라들고,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던 시기였다. 앞이 캄캄했다. 활로를 찾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