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64) 세일즈의 시작
#1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두려웠다. 눈 뜨자마자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해서 유료회원이 몇 명인지 확인해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당시 기업 아이디 1개가 3만원. 전날 매출이 9만 원이었다. 벌써 사이트 오픈한 지 1달이 다 되어 가는데. 이런 식이라면 굶어죽기 십상이었다. 전날 태평양 집행부와 로앤비 경영진간에 정기 면담이 있었다. 오히려 사이트 오픈 전의 우리는 기가 살아 있었다. 지켜만 보십시오. 사이트만 나오면... 이라고 으스댔다. 하지만 사이트가 막상 오픈된 이후 처참한 매출 실적에 부끄러워 말이 안 나왔다.
#2
오용석(YSO) 대표 변호사가 질문했다.
“이제 상품을 만들었으니 팔아야 하지 않나요? 어떻게 팔 건지 계획은 있겠지요?”
내가 마케팅 이사로서 답변했다.
“일단 이 서비스는 사전에 고객교육이 필요한 서비스라 생각합니다. 사이트에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 놓아도 어떤 점이 업무에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시연을 통해 보여줘야 합니다. 결국은 법무팀이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개별 방문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오용석 변호사님이 말했다.
“온라인 서비스인데 차 팔듯이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나 세일즈 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래 가지고 언제 손익분기점에 오를 수 있을까요? 마케팅 인원도 몇 명 되지 않을 텐데?”
그랬다. 당시 로앤비 직원은 7명 정도였는데 대부분 컨텐츠 작성 요원들이었고(로앤비가 컨텐츠 사이트이다 보니) 마케팅 직원은 1명 뿐이었다. 그 친구랑 나랑 마케팅을 해야 할 판이었다. 나는 “네, 하지만 부딪혀 보겠습니다. 일단 태평양 변호사님들의 고문기업들 중심으로 소개를 받아 제가 거기를 방문한 후 로앤비 사이트를 설명하고 판매해 볼 계획입니다.”라고 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직접 발품을 파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포탈 사이트에 큰 돈을 주고 배너를 걸 수 있는 그런 서비스도 아니지 않는가.
#3
“이 변호사님, 혹시 신한은행 법무팀에 친한 분 안 계십니까? 저희 로앤비를 소개 좀 하려는데...”
“아, 있지. 박경률 이사라고. 법무팀 이사가 나랑 일을 많이 해. 그쪽에 말해 둘까?”
“네, 감사합니다.”
난 박경률 이사의 전화번호를 받은 다음 박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평양 법무법인의 변호사가 전화가 왔다길래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박이사는 내 설명을 듣다가 “아, 잠깐만요. 로앤비는 또 뭐고, 태평양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아... 자회사라구요? 그래서요? 아.. 로앤비의 서비스를 소개하고 싶다? 그게 무슨 서비스인데요? 아, 인테넛으로 뭘 보는 건가 보죠? 그럼 저희 실무 대리에게 전달해 놓을 테니 만나 보세요.”라고는 서둘러 끊었다. 그렇게 신한은행의 대리 전화번호를 받아 약속을 잡고 신한은행 본점을 방문했다.
#4
변호사가 직접 신한은행에 왔다고 하니 법무팀 대리는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건을 의뢰하거나 사건 상담을 할 때는 거의 의뢰인이 로펌을 방문하던 그런 시기였기에.
우선 로앤비 회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법무법인 태평양의 자회사인데, 인터넷 법률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로서 블라블라), 갖고 간 팜플렛 자료와 함께 노트북 화면을 통해 로앤비 서비스를 시연했다. 대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 설명을 듣더니 “이걸 쓰면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죠... 흠.. 이거 비용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었다.
오호, 바로 비용 얘기를 하는 거 보니 내 설명이 먹혔나 보다. 나는 한껏 신뢰감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아이디 1개당 3만원인데요, 만일 5개 이상 구입하시면 4개 값만 받습니다. 헤헤” 그러자 대리는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3만원 요?”라고 물었다.
너무 비싼가? 나름 합리적인 가격으로 설정했는데...
#5
나는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데 그 다음 대리의 말이 걸작이었다. “3만 원짜리를 변호사님이 왜 팔고 계시나요? 사건 하나만 큰 거 해도 몇 천만 원씩 수임료 받으시면서...”
그니까요... 허허... 3만원이 좀 그렇나요...
대리는 이런 서비스는 처음 접해 보는 관계로, 윗분들에게 잘 설득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테스트 아이디 2개를 발급해 주면서 “테스트 해보시고 성능을 살펴봐 주세요. 특히 법령 3단 보기나 관련 판례를 링크로 계속 보는 기능은 국내 최초랍니다.”라는 멘트를 잊지 않았다.
신한은행을 나오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콧날이 찡했다. 뭐랄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착수금 3000만원 짜리 사건 하나랑 비교해 보면, 1개 3만 원 짜리 아이디를 1000개 팔아야 하는데.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가방을 들고 터덜터덜 전철로 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