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65) 세일즈에 조금씩 눈을 뜨다
#1
목표를 세웠다. 하루에 최소 5군데를 방문하자! 나는 수시로 태평양 선배, 동기 변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들이 거래하는 업체 법무팀을 소개 받았다. 그리고는 엑셀에 연락처를 쭉 정리했다. 적어도 거래하는 변호사가 연결해 준 것이기에 완전 문전박대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그리고는 전화를 돌렸다. 미리 어떻게 효과적으로 설명할 건지 A4용지에 적어두고 활용했다. 처음에는 예의상 들어주더니 “그런데... 저희는 아마 그 서비스를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괜히 시간 낭비 하시는 것 같아서...”라며 완곡하게 거절하는 곳도 더러 있었다. 나는 “네, 거절할 때 거절하시더라도 일단 설명을 한 번 들어보시면 어떨까요?”라며 간절히 매달렸다.
평소 세일즈 전화에 냉담하게 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2
당초 하루 5군데 방문을 목표로 잡았지만 실상은 2-3군데 가면 많이 가는 편이었다. 동선(動線)을 잘 짜야 일과 시간 중에 2-3군데를 방문할 수 있었다. 열심히 설명하고 테스트 아이디 발급하고 했지만, 정식 구매로 이어지는 전환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어떤 곳에서는 딱 10분만 설명을 듣더니 난색을 표명하고 잡상인 몰아내듯이 몰아내는 곳도 있었다. 그럴 때는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3
동기 송 변호사에게 역시 아는 고문기업을 소개해 달라고 전화했더니 송 변호사가 말했다.
“나 곧 미국 가.”
맞다. 우리 동기들, 올해 미국 유학 가는 해지. 까먹고 있었네. 내가 유학 안 가기로 해서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했더니... 송 변호사가 말미에 한 마디 한다. “태평양에서는 조 변호사가 괜히 추운데 가서 찬바람 맞으며 사서 고생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어.” 에라이, 전혀 도움 안 되는 친구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속이 쓰렸다.
#4
나는 서점에 가서 ‘세일즈’와 관련된 책을 왕창 샀다. 고상한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아닌 실전적인 ‘세일즈’에 대한 책만 샀다. 그 책들을 보니 ‘왜 대학에는 마케팅 학과만 있고 세일즈 학과는 없을까요?’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렇네. 마케팅과 세일즈를 왜 차별하지?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일즈일 텐데.
세일즈 바닥에서 가장 치열한 곳이 자동차와 보험 쪽인 것 같았다. 외국서적도 보고, 국내 보험왕, 자동차 판매왕 들의 수기도 읽었다. 뭔가 조금씩 세일즈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아무런 기초도 없이 세일즈를 시작했던 거구나 반성이 되었다.
그리고 마인드 셋을 새로 가졌다. ‘거절을 두려워하거나 속상해 하지 말자’는 마음가짐. 나는 적어도 내가 판매하는 로앤비 상품에 자신이 있다. 한 달에 3만원을 내고 쓸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상품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불행한 것일 뿐이다.
#5
나는 세일즈 책들을 읽고 난 후 거기서 배운 몇 가지 잔기술(?)을 썼다.
우선 첫 번째는 우리 서비스 도입을 거절할 경우 그 거절의 이유를 완곡히 물어보는 것이다. “네, 대리님. 도입여부야 회사 측에서 결정하시는 것이니 그에 따라야지요. 다만 저는 앞으로도 여러 곳에 가서 이 상품을 팔아야 되는데, 저희 상품에 어떤 점이 더 보완되어야 할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앞으로의 영업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사 달라는 게 아니고, 안 사는 거 인정하고, 다만 뭐가 미흡했는지 말해 달라고 하면 대부분 고객들은 솔직한 평가를 해주었다. 그 평가가 아주 요긴했다. ‘좋은 서비스만 만들면 무조건 잘 팔리겠다’는 공급자 측의 마인드가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고객들이 조언자 입장으로 바뀌게 되면, 그와 나는 우호적인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그 빈틈을 추가적으로 치고 들어갈 여지가 생긴다.
#6
두 번째 잔기술은 그들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진행한 것이다. 어차피 고객들은 법무팀 직원이다. 나는 그래도 명색이 태평양의 변호사 아닌가. 로앤비 상품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법무팀 일이 힘드시죠?’며 우회적인 공략을 한다.
대부분 법무팀 직원은 한 두 개쯤의 고민거리를 갖고 있다. 고민이 있다고 바로 로펌에 물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용이 들기 때문에.
바로 그 틈을 공략한 것이다. 법무팀 직원들은 자기가 안고 있는 업무 중 변호사의 조언이 필요한 내용들을 내게 물었고, 나는 성심성의껏 무료 봉사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는 동기 변호사들에게 물어서라도 답을 해줬다. 내가 뭔가를 베풀었으니 그들은 빚진 마음이 된다. 그러면서 하나 둘씩 계약이 성사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한번 거절당하면 다시 제안할 엄두를 못 냈는데, 이제는 뻔뻔하게(?) 친한 척 전화를 해서 세상 이야기도 하고, 뭐 법률상담이 필요 없는지도 물어보면서 질척이는 로앤비 영업을 시전했다.
세일즈가 조금씩 재미있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