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67) 잔고가 팍팍 줄어들고 있다
#1
로앤비 경영진은 좀 더 전략적인 세일즈를 도입하기로 했다. 의미 있는 곳에는 로앤비 ID를 무료 기부하기로 한 것. 우선 대법원은 우리에게 일부 판례를 제공해 주고 있었기에 판사들이 쓸 수 있는 ID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사법연수원과 전국 법과대학에도 무상으로 ID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사법연수원생이나 법대생이 로앤비를 유료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이 막상 로앤비를 사용하다 나중에 변호사가 되고 나면 그 습관(?) 때문에 자기 돈을 내든가 로펌에 로앤비 구입을 요청할 것이라는 계산이 되었다. 잠재 고객들을 미리 잡아둔다는 의미가 컸다. 로앤비와 비슷한 미국의 웨스트로나 렉시스넥시스도 로스쿨에는 ID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도 중요 레퍼런스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로앤비를 널리 알리고, 변호사 고객을 확보하는 데 아주 큰 기여를 하게 된다.
#2
로앤비 경영진은 수시로 은행 잔고를 확인했다. 사이트 개발비와 인건비, 부대 비용으로 돈이 팍팍 줄었다. 하지만 아직도 매출은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우리는 우아하게 로앤비 사이트에서 ID만 팔아서 수익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듯 했다. 그때부터 로앤비 경영진은 본격적인 ‘수익모델 발굴’에 눈을 돌렸다. 돈 벌자, 돈 벌어야 한다. 2000년 후반기 로앤비의 고민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였다.
#3
온갖 아이디어들이 출몰했다.
로앤비에서 인터넷 정보사업만 하지 말고, 사건도 수임해서 처리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내가 냈던 의견이다. 아이디 1개 3만 원짜리 팔다보니 착수금 1,000만 원 받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도 사건을 수임해서 소송도 같이 해보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는 로앤비의 본질에 어긋나는 일이라 채택되지 못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본 것이 승소 가능한 사건에 소송비용을 먼저 대주고 나중에 그 대가를 받는 방식이었다. 독일에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A라는 사람이 소송을 하면 승소가 확실한데 소송을 제기할 비용(변호사 비용, 인지대)이 없다. 이 때 로앤비가 그 사건의 승소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한 뒤 A가 부담할 소송비용을 대납해 준다. 그리고 나중에 승소하면 그 승소금액 중 일부 비율(20% 정도)을 투자수익으로 돌려 받는 방식이다. 투기성이 있지만 승소가능성만 잘 판단하면 해 볼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태평양 경영진에 의해 기각 당했다. 변호사 협회와의 문제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분란을 일으키지는 말라는 것이 태평양 집행부의 생각이었다.
#4
그 외에도 정말 많은 BM들이 논의되었다. 특히 독일에서 로앤비와 비슷하면서도 앞서가는 사이트인 야노로(www.janolaw.de)를 만든 한국인 출신 정하성 독일 변호사를 만나서 로앤비의 미래를 고민했다. 정하성 변호사는 법률 디지털화의 선두주자였고, 이미 그 당시(2000년)에 상당한 부도 축적한 상황이었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또 부동산 등기작업을 자동으로 진행하게 하는 솔루션을 가진 업체와 제휴해서 당시만 하더라도 일일이 법무사가 관여해야 했던 부동산 등기를 싸고 손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등기를 다량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은행이 좋은 타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솔루션이 있어도 이미 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법무사와 큰 고객 간의 타이트한 관계를 뚫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렇게 하면 싸고 편하지 않습니까?’라는 접근이 비합리적인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5
와, 이렇게 돈을 벌기가 힘든 것인가. 변호사 시절, 큰 기업들하고만 상대하다보니 매출 몇 조원, 몇 천 억 원이 우습게 보였다. 그런데 내가 막상 사업체를 운영하다보니 직원 7명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버는 일조차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문득 이 세상 모든 사장님이 대단해 보였다.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고 그리고도 이익을 남기는 사장님들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같았다.
이 당시의 경험은 나중에 내가 다시 태평양 변호사로 복귀했을 때, 의뢰인들의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좋은 토대가 된다.
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굶어죽기 딱 십상이라는 판단 하에 내가 전면에 나서서 돈을 벌 수 있는 하나의 비책(祕策)을 생각하고 로앤비 경영진에 상정했다. 바야흐로 로앤비 교육사업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