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76) 파트너 승급에 빨간 불이 켜지다
#1
2003년 가을경, 우리 입사 동기들은 파트너 승급 심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작년까지 선배들 중에서 파트너 승급에서 탈락한 사람은 거의 없는 걸로 알아. 좀 문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사전에 경고 받고 자진해서 퇴사한 경우가 몇 명 있을 뿐이고. 우리들 중에 따로 경고 받은 사람 없지?”
소식통 송 변호사가 요긴한 정보를 줬다.
아... 파트너 승급이 안 될 거 같으면 미리 언질을 주는구나.
“우리 기수들은 뭐 다 잘 되지 않을까? 조 변은 뭐... 다른 얘기 들은 거 없니?”
동기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나로서는 뭐 딱히 들은 얘기는 그때까지 없었다.
#2
어느 날 오후 이재식(JSL) 대표변호사님이 나를 찾았다. 회의실로 갔다.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꺼내시는 이 변호사님.
“조 변, 이제 로앤비에서 태평양 복귀한 지 얼마쯤 되나?
“예, 이제 8개월째입니다.”
“그래, 다시 송무를 해보니 할만 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러시나....
“파트너 승급 심사위원회에서 이런 저런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자네들 동기들도 별 문제 없이 전원 파트너 승급이 될 것 같아. 다만 조 변에 대해서는 이견이 좀 있어.”
아... 역시 그것 때문에 부르신 거구나.
#3
“자네도 알겠지만 태평양에서 파트너 승진하는 루트가 있잖아. 한 분야에서 3-4년 정도 집중적으로 일하다가 유학 다녀와서 그 분야에 다시 복귀하는. 지금 자네를 제외한 다른 동기들은 자기 전문분야가 있지. M&A, 건설, 조세, 형사. 그런데 자네는 좀 애매해.”
“자네의 경우 우선 첫 해는 일반 민사부에 있었고, 2년차부터 IP팀으로 갔었지. 그런데 IP팀에서 3년 정도 하다가 로앤비 프로젝트를 했고, 그렇게 3년을 사업하고 들어와서는 이번에는 IP팀이 아니라 일반 민사 송무팀으로 들어 온 거잖아. 지금 일반 민사 송무팀에는 자네보다 연수원 기수는 아래지만 자네보다 송무팀 경력은 더 높은 변호사가 둘이나 있어. 자네가 과연 그 후배들보다 송무를 잘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선배들이 있단 말야.”
따지고 보면 내가 커리어 관리를 이상하게 한 측면이 있었다.
#4
사실 로펌에서 파트너로 승급시킨다는 의미 중에 중요한 것은, 저 사람의 사고를 내가 책임져 주겠다는 의미이다. 로펌은 ‘합명회사’인데(물론 이는 나중에 유한회사로 바뀜), 합명회사의 파트너(무한책임사원)는 다른 파트너의 사고에 대해 자기 개인재산까지 동원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독특한 구조다. 따라서 내가 저 후배와 친하다고 파트너를 시켜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 후배가 만일 업무하는 과정에 사고를 치면 내가 다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신이 맡은 업무 분야에서 의심할 바 없는 실력이 축적되어야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운명공동체로 받아들이는 일이니까.
#5
“나나 황의인(EIH) 변호사는 자네가 파트너 되는 데 손색이 없다고 주장하고는 있는데, 자문파트 경영진 변호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네. 다음 주에 심사위원회 앞에서 면접을 볼 텐데, 그때 자네 뜻을 정확히 밝히게. 자문파트 선배들의 이야기도, 자네가 절대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1년 정도 더 지켜보고 결정하자는 얘기야. 동기들보다 1년 늦어지겠지만 실력으로 인정받고 정당하게 파트너 되는 게 더 좋은 일일 수도 있어. 잘 생각해 보게.“
하하. 일이 그렇게 되었구나. 다음 주에 면접이 있단 말이지?
오케이. 그럼 그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면 되겠구나.
나는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