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뚜벅이 변호사와 K POP - 2편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79) 뚜벅이 변호사와 K POP - 2편

#1

“변호사님, 급히 좀 들어오셔야겠습니다.”

SM법무팀 송 과장이 아침 일찍 전화를 했다. 목소리에 다급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뭐지? 심상치 않은데... 나는 급히 SM으로 들어갔다.

회의실에 묵직한 침묵이 깔려 있었다. 이수만 회장 이하 임원들이 전부 나와 있었다.

자리에 앉는 나에게 박 이사가 서류 하나를 줬다. 내용증명이었다. 제목은 ‘전속계약 무효 통보’였다. 발신인은 동방신기의 세 멤버(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를 대리한 법무법인 세종이었다. 뭐야, 동방신기가 갈라지는 거야?

#2

내용을 보니 수익정산에 문제가 있다는 점, 혹독한 관리로 인해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제기되어 있었고, 결론적으로 자기들과 SM의 전속계약은 ‘노예계약’이므로 무효라는 주장이었다. 노예계약이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방신기 멤버들이 상을 수상하면서 이수만 회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아버지’라고 표현해서 언론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었는데... 나는 조심스레 이수만 회장의 표정을 살폈다. 내가 만나본 것 중에 가장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공격이 들어왔으니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그 내용증명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는 내용증명을 작성해야 하고, 앞으로 불어 닥칠 후폭풍에 대비해야했다.

#3

회의를 마치고 나와서 박 팀장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도쿄 돔 행사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SM의 전 스탭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었단다. 박 팀장도 정말 이 일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행사를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이런 내용증명을 받고 나니 박 팀장은 허탈해 했다.

“노예라뇨... 그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매년 수익을 몇 억 원씩 받아 가는데 노예라뇨? 제가 데리고 있는 스탭들은 진짜 박봉만 받고서도 K Pop 제대로 키워 보자고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데, 이건 아니지 않나요? 변호사님.”

내가 뭐 딱히 할 말이 있으랴...

#4

박 팀장은 이어서 말했다.

“경영진들은 아마 고민 클 겁니다. 지금 SM 매출 90%가 동방신기로부터 나오거든요. 그만큼 회사 차원에서 동방신기에 올인한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나는 박 팀장을 안심시켰다.

“저들의 내용증명 중에는 반박할 것들이 많아요. 계약이 그리 쉽게 무효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뭐에 씌여서 이런 판단을 할지 모르지만 법적으로 다투다보면 아마 쟤들도 정신을 차릴 겁니다.”

그러자 박 팀장이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법적으로야 변호사님이 싸워주시겠죠. 하지만... 저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연예인 매니지먼트라는 게 서로 간에 믿음이 없으면 안 되거든요. 그냥 돈만 보고 일한다면 저 차라리 딴 거 하는 게 낫습니다.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저희 스탭들은 사명감 같은 게 있어요. 그런데 아티스트들이 노예취급 당했다고 한다면 이 일을 같이 한 저희는 뭐가 되나요. 저희 스탭들은 그 동안 제대로 케어하지 못했던 슈퍼주니어나 소녀시대를 적극적으로 키우고 서포트 해야겠어요. 상대적으로 그 친구들이 동방신기에 비해서는 등한히 됐던 것도 사실이거든요. 일단 소녀시대 일본 진출부터 이끌어 낼 겁니다.”

#5

생각보다 박 팀장은 인간적인 배신감이 큰 것 같았다. 그 이후 나는 동방신기 계약분쟁 사건에 온전히 휘말려 들어갔다. 연일 매스컴은 이 사건을 크게 다루었다. 연예가 중계를 비롯한 연예프로그램에서는 SM의 입장을 요구했고, 그 대응 인터뷰는 전부 내가 맡아서 했다. 졸지에 노예계약으로 연예인을 착취하는 매니저먼트 회사가 되어버린 SM을 변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6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계약기간이 13년으로 너무 장기간이라는 점이었다. SM의 입장은 이랬다. 아이돌 그룹 하나 키우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연습생 시절 4-5년은 기본이다. 그 이후에 데뷔를 하게 된다. 동방신기는 한국 시장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시장까지 겨냥해서 만든 그룹이다. 한국에서 뜨는 데 3-4년, 그 이후 일본 가서 3-4년, 중국 가서 3-4년, 이렇게 합치면 최소 12-13년의 계약기간이 보장되어야 회사로서도 막대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 동방신기 일본 진출과 관련하여 일본의 대형 음반사인 A사와 논의를 할 때, A사가 제일 처음 물어봤던 부분이 ‘동방신기 멤버들이 SM과 몇 년 계약으로 묶여 있나요.’였다. 계약기간이 짧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피력한 바도 있었다.

#7

그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실로 어마어마한 메일 폭탄을 받았다. 팬클럽 카시오페이아의 경우, 동방신기 자체 팬도 있지만 개별 멤버들의 팬들이 따로 존재했다. 계약 무효를 주장한 3명의 멤버들 팬에게 있어 나는 ‘우리 오빠들 못살게 구는 매니지먼터사의 앞잡이 변호사’인 것이다. 내가 평생 들을 욕은 그때 다 들었다.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결국 그 사건은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약무효로 인정되었고, 그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연예인 전속계약의 새로운 모델이 나오기도 했다. 이유야 어떻든 장기계약은 연예인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8

나는 그 이후에도 아이돌 그룹을 보고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저 하나의 그룹을 키우기 위해 그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스탭들의 땀과 눈물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오늘날 K Pop이 세계적으로 힙하게 된 데는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그 스탭들의 숨은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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