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78) 뚜벅이 변호사와 K POP - 1편
#1
“저희들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왔습니다. 요즘 전속계약 관련해서 신경 쓸 것들이 많아서요. 공부를 좀 해야겠습니다.”
내가 SM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3년경 로앤비 교육강좌를 진행할 때였다. SM이라? HOT, 보아, 플라이투더스카이. 나도 음악을 좋아하는지라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계약에 관심을 갖는다고? 그렇게 해서 친해지게 된 운영팀의 박 팀장. 여장부였다. 나는 박 팀장을 통해 아이돌 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예전의 싱어송 라이터 시절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하나의 그룹이 세상에 나오려면 보이지 않는 수면 밑에서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필요했다. 심지어 노래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세계 곳곳의 100여 명 이상의 작곡가들로부터 곡을 받은 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2
어느 날 SM에 갔다가 박 팀장을 만났는데,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조금 있으면 H.O.T.보다 더 훌륭한 그룹이 하나 나올 겁니다.”
“그래요?”
“이번 주말에 방송에 나올 텐데 변호사님 꼭 한번 보세요. 진짜 저희들이 심혈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그룹일지 궁금한 마음에 그 주말 TV 가요프로그램을 봤다. 그룹명은 동방신기(東方神起), 5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그런데... 내가 볼 땐 별로였다. 이쁘장하게 생기긴 했는데 그리 임팩트 있어 보이지도 않고 노래도 그저 그랬다. 박 팀장이 호들갑을 떨었나 싶었다.
그런데 동방신기는 데뷔 이후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불과 몇 달 만에 차트 1위는 물로 각종 CF를 섭렵했다. 덕분에 나도 CF 계약서들을 검토하느라 바빴다.
#3
“솔직히 전 별로였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인기를 얻네요?”
내가 신기한 듯 묻자 박 팀장은 말했다.
“그게 선생님(이수만 회장을 지칭)의 무서운 점이지요. 선생님의 프로듀싱 능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내가 SM에 가서 회의를 할 때 인사차 몇 차례 이수만 회장실을 방문했었다. 내가 특이하게 느낀 점은 회장 책상 옆에 큰 보드가 있고 거기에는 SM의 전체 아티스트 사진이 붙어 있었다.
“선생님은 매일 저 보드를 보십니다. 저 친구는 어떤 점을 부각해야 할까? 저 친구는 노래가 안 되면 연기력을 키워야 하는데... 라면서 아티스트의 장점을 발견하느라 고심하십니다. 마치 원석을 캐서 보석을 만들 듯이요.”
박 팀장의 설명이었다. 역시 앞서 가는 사람은 다르구나 싶었다.
#4
2008년경 나는 SM으로부터 사건을 하나 위임받았다. 당시 동방신기가 내 놓은 ‘주문(mirotic)’이라는 노래 가사 중 일부가 청소년 보호위원회로부터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받은 것. 이렇게 되면 방송에서 그 노래를 틀 수 없다. 타이틀로 밀고 있는 곡이었기에 SM으로서는 타격이 컸다.
문제로 지적된 가사들은 “I got you under my skin.” “혈관을 타고 흐르는 수 억 개의 나의 crystal”, “너를 가졌어 you know you got it.” 였다.
우선 ‘I got you under my skin.’은 직역하면 ‘널 내 피부 밑에 품는다’가 되는데, 다분히 성적인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작사가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이 표현은 ‘내가 너에게 완전 매료되었다’라는 의미란다). 그리고 ‘너를 가졌어’ 이 부분도 성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수 억 개의 나의 crystal’은 마약을 은유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청소년 보호위원회의 판단이었다.
청소년들을 위해 유해한 가사를 심의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
결국 법원에 재판을 제기해서 6개월 정도 심리한 끝에 SM은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다만 I got you under my skin은 재판 전에 SM이 자체적으로 ‘under my sky’로 바꿨다. 이 사건에서 승소를 하자 내 메일함은 폭발해버렸다. 동방신기 팬들이 내게 감사 메일을 보냈는데, 그 양이 엄청나서 메일 서버가 다운된 것이었다. 태평양의 전산실이 난리가 났다. 다른 변호사들의 메일까지 송, 수신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팬덤이 그리 강력한지 몰랐다.
카시오페이아.
동방신기 팬클럽의 이름이다. 단일 그룹 팬클럽으로는 가장 인원수가 많아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했다(요즘은 아마 BTS의 ARMY가 훨씬 더 많으리라).
#6
2009년 상반기, SM은 동방신기의 대규모 공연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바로 도쿄 돔 공연이 그것이었다. 한국 아이돌 그룹 최초로 일본의 자존심이라 일컫는 도쿄 돔에서 ‘단독공연’을 주비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동방신기가 한국을 넘어 일본에서 제대로 런칭을 하는 행사였다.
내가 알기로 일본의 음반 가격은 한국의 3배 정도였고, 시장 규모도 훨씬 컸다. 사실 동방신기는 처음 데뷔 때부터 한국-일본-중국 순서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기획된 그룹이었기에 일본 도쿄 돔 행사는 엄청나게 중요했다. 괜히 나까지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도쿄 돔 행사 이후에 동방신기의 위기가 찾아올 줄은 당시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p.s. 사진은 2007년 SM을 방문했을 때 이수만 회장님, 동방신기와 같이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