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강의는 나에게 참 고마운 존재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80) 강의는 나에게 참 고마운 존재

#1

“변호사님, 올해도 경법사 잘 부탁드립니다. 벌써 4회째네요.”

2004년 가을 무렵 로앤비 교육팀장인 강 팀장이 연락 왔다. 경법사가 벌써 4회째구나...

경법사. 경엉법무관리사의 줄임말이다.

로앤비 매출을 위해 부랴 부랴 교육사업을 시작하면서 개별 강좌들을 개설했고, 내가 대부분 강의를 맡아서 진행했다. 생각보다 기업법무교육에 대한 시장 수요가 컸다. 그래서 일종의 종합반 형태 강좌를 추가로 개설했는데 그것이 바로 경영법무관리사 과정이다.

민간자격증은 일정 요건만 갖추면 발급이 가능하다. 이 과정을 수강하고 소정의 시험을 통과하면 경영법무관리사 라는 자격증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2

당시만 해도 법무팀에는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실무적인 능력이 있음에도 별다른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항상 이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로앤비는 바로 이 점을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사내 법무팀이라면 알아두어야 할 전반적인 내용(계약, 노동법, 공정거래법, 채권회수, 형사, 회사법, 지재권법)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커리큘럼이었다. 첫해는 내가 계약, 형사, 회사법, 지재권법을 맡았고 다른 과목은 전문가들을 초빙했다. 나는 개별과목을 맡는 외에 ‘주임교수’라는 이름을 달고 전체적인 진행을 책임졌다. 수강료가 거의 100만 원에 육박했는데, 대부분 회사 결재를 득해서 회사 비용으로 수강신청을 했다. 회사 돈으로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회사 업무에 도움 되고. 여러모로 윈윈하는 구조였다.

#3

신림동에서 일타강사로 나름 잔뼈가 굵었지만, 그때는 고시생 상대였고, 이제는 기업법무팀 상대의 강의라 로앤비에서의 강의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내 강의는 이론적인 부분보다는 실제 현업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기법을 주로 강의했다. 그러다보니 내 경험담을 많이 담았다.

내가 계약서 관련 강의를 한다고 하니 선배들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조변이 계약서 검토하는 걸 다 가르쳐 주면 우린 뭐 먹고 사냐? 그거 영업비밀 침해 아냐?”

나도 그런 걱정이 조금은 있었는데, 막상 강의를 해보고 느낀 결과는 달랐다.

우선 강의를 듣다보면 법무팀은 ‘아, 계약서 검토가 이리 중요하구나. 함부로 계약서 썼다가는 큰일 나겠구나’라는 경각심을 갖게 된다. 더 나아가 ‘계약서 검토를 아무에게나 맡기면 안 되겠는걸. 물론 나도 배워서 할 수는 있겠지만 전문가에게 맡겨야겠어. 강의하는 조 변호사가 계약서는 잘 봐줄 것 같네. 저 양반에게 맡겨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실제 내 고객 중 상당수는 내 강의를 들었던 수강생들이다. 같이 술 마시고 골프 치면서 영업한 것이 아니라 수업으로 영업을 한 셈이다.

#4

나는 강의를 준비할 때(신림동에서도 그랬지만) 항상 적절한 웃음 포인트를 중간 중간 심어둔다. 미리 시나리오를 짤 때 어떤 농담을 할 것인지를 정해 둔다.

대부분 내가 로펌 변호사를 하면서 실수했던 경험, 선배들로부터 야단맞으면서 배웠던 경험들이 웃음 포인트의 주요 내용이었다. 지금 뚜번이 변호사 시리즈에서 다루었던 내용들, 황보영(BYH), 이형석(HSL) 변호사에게 혼났던 내용들, 만화책 보다가 대표변호사님(ISK)이 보시고 당황해 했던 이야기, 상표권 침해 사건에서 돌쇠와 갑순이 해프닝, 퇴근 포기하고 사무실에서 새우잠 잔 이야기 등은 그 당시 강의 때 마르고 닳도록 써 먹던 것들이다. 지금 와서 글을 쓰면서도 그 예전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일기장을 쓰거나 한 것이 아니라 강의 때 수도 없이 인용해서 내 머리에 단단하게 저장되었기 때문이다.(솔직히 요즘은 1-2년 전의 일도 잘 기억을 못한다).

#5

신림동에서 시작된 마이크 밥은 군대 가서 군법교육을 100여 차례 하면서 단련되었고, 로앤비 강의를 통해 꽃을 피웠다.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기업법무 관련해서 가장 많은 강의를 했던 사람은 단연 나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 강의를 통해 나를 알리고 사건을 수임할 수 있었다. 아울러 무대에서 강의를 계속한 경험은, 법정에서 구두변론을 하거나 증인신문을 할 때 떨지 않고 자신 있게 말하고 청중들(판사)의 반응을 보면서 변론할 수 있도록 내공을 키워주었다. 여러모로 강의는 나에게 참 고마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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