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형사사건 변호는 가히 종합예술이라 - 1편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82) 형사사건 변호는 가히 종합예술이라 - 1편

#1

최희중(가명)

그는 내가 변호사 생활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나보다 2살 어려서 언제부턴가 형, 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예전에 큰 사업(반도체 부품 제조)을 했는데, 부도가 나고 가정은 풍비박산된 후 조그만 원룸 오피스텔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최희중은 약 2년간의 칩거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가운 일이었다. 지난 시간 그에게 무슨 사연인가 있었겠지만 젊은 나이에 계속 오피스텔에 칩거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2005년 1월 중순 어느 날 오후.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형님, 희중입니다. 저 지금 강남경찰서에 체포되어 와 있습니다.”

“뭐? 체포? 무슨 일로?”

“형님, 저... 그 동안 제가 말씀 못 드렸었는데 사실 저 고소 당해 기소중지 중이었습니다. 오늘 우연히 불심검문에 걸려서 이렇게...”

아하. 그래서 오피스텔에서 칩거하고 있었던 거?

나는 급히 강남경찰서 유치장으로 달려갔다.

#2

“죄송합니다. 제가 속이려고 그랬던 것은 아닌데.”

“난 변호사야.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을 말해 봐.”

최희중은 몇 년 전 사업이 부도나면서 여러 투자자들에게 빚을 지게 되었는데, 최희중에게 2억 원의 돈을 투자했던 채권자가 최희중을 상대로 사기죄로 형사고소 했고, 최희중은 그 이후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솔직히 다른 투자자분들은 제가 속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셨어요, 그런데 유독 방 사장 그 분은 마지막까지 절 괴롭혔어요. 깡패들을 데리고 집에까지 와서 행패를 부렸고, 제 와이프 월급에까지 압류를 거는 바람에 결국 와이프와도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방사장이 최희중을 고소한 죄목은 사기다. 즉 최희중이 거짓말을 했고 이에 속은 방사장이 최희중에게2억 원의 돈을 줬다는 점이 인정되어야만 사기죄가 성립된다.

#3

당시 최희중은 사업 설명하면서 사업 전망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업설명이 그렇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했단다다. 하지만 투자 받은 이후 반도체 경기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최희중은 사업적인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최희중이 투자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기 보다는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했었는데, 예상 외의 반도체 경기 침체로 인해 영향을 받아 사업이 어려워졌고 결국 부도가 되었기 때문에, 최희중이 방 사장을 상대로 사기죄를 범했다는 방사장의 주장은 충분히 반박할 여지가 있었다.

#4

설명을 다 들은 나는 최희중에게 “충분히 싸워볼 만했는데, 왜 도망만 다녔어?”라고 물었다.최희중은 “그 당시는 도저히 싸울 힘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사업도 망가지고 와이프와도 결국 헤어지게 되니 죽고 싶었습니다. 사실 자살 시도도 몇 번 했구요. 그러다가 이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라면서 눈을 감았다.

“오히려 잘 됐습니다. 그 동안 사실 기소중지됐다는 사실 때문에 외부에 나갈 때마다 신경이 쓰였고, 길거리에서 경찰관을 봐도 가슴이 덜컥했는데, 이제 오히려 속이 시원합니다. 죗값을 치르고 차라리 속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희중은 정말이지 가슴을 짓눌렀던 돌덩이를 내려 놓는 기분인 것 같았다.

#5

과연 최초 투자 받을 당시 최희중에게 ‘사기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충분히 다퉈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최희중이 2년 가까이 도피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수사관으로서는 최희중이 도피생활을 한 것 자체가 뭔가 캥기는 구석이 있으니 그랬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질 확률이 크다. 그 때 이 문제를 풀었어야 하는데... 이처럼 인생의 고비마다 숙제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으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 다시 그 숙제를 하게 되는 법이다.

#6

나는 최희중에게 이 사건은 내가 변호해 주겠다는 점, 이 사건의 핵심은 고소인(방사장)에게 거짓말을 해서 투자를 유치했는지 여부인데, 적어도 이 사건 투자를 받을 당시에는 반도체 경기 전망이 좋았기 때문에 최희중이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던 내용에 대해서는 최희중 본인도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었으며, 결코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일관되게 진술해야 한다는 점을 일러 주었다.

최희중은 체포된 그 날 밤에 남양주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고소인인 방사장이 2년 전에 최희중을 고소할 당시 최희중의 주소지가 남양주시였기 때문에 기소중지된 사건은 남양주 경찰서에 1차적인 관할권이 있었다.

다음 날 오전 최희중에 대한 경찰의 1차 조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아침 일찍 남양주 경찰서로 달려갔다. 담당 수사관은 윤채동(가명) 경위였다. 30대 중반의 아주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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