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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왕진(往診)가는 변호사

by 조우성 변호사

<태평양 로펌에 가다 변호사>(92) 왕진(往診)가는 변호사


#1


로펌에서 파트너가 되고 나면 영업을 해야 하는데, 영업의 가장 핵심은 개별 사건을 수임하는 것보다는 특정 기업과 고문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고문계약을 체결하면 변호사는 해당 기업으로부터 월 일정금액(50만원~200만원)을 지급받고서 상시적인 자문을 해주는데, 자문을 계속 하다보면 소송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그 소송사건은 당연히 기존에 자문을 해주던 로펌에 맡기게 된다.


“황의인 변호사님은 관리하시는 고문기업이 100개가 넘는다는데?”


“우와, 그게 인간적으로 가능한 수치냐?”


후배들은 선배들의 막강한 영업력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2


주니어로 있다가 어느 날 파트너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고문기업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웬만한 기업들은 4대 로펌 파트너 변호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고문계약을 체결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이 되었다. 역시 이 문제에 해답을 준 것은 강의였다. 한 달에 내 강의를 듣는 사람이 50명이 넘었고, 나는 강의 중간에 ‘고문계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자 보통 한 달에 2-3건 씩의 고문계약이 이루어졌다. 숨통이 좀 트였다.


#3


강의로 맺어진 대표적인 고문기업이 00공제회다. 그 곳의 박 과장이 내 강의를 듣고서 고문계약이 되었다. 박 과장과는 같이 판례스터디도 하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00공제회를 지나는 길에 잠시 박 과장 사무실에 들렀다. 박 과장은 자판기 커피를 타주었고 우리는 휴게실에서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눴다. 그때, 00공제회 사업부서의 한 직원이 박 과장에게 법무 질의를 하러 왔다. 그러자 박 과장이 “잘 됐네요. 오늘은 진짜 변호사님이 오셨으니 직접 물어 보십시오.”라고 내게 그 직원을 소개해줬다. 사업부의 유 차장. 명함을 건네더니 파일을 보여주며 고민을 이야기했다.


#4


오호,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였다. 유 차장은 몇 달 동안 이 문제를 부여안고 끙끙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법무팀 박 과장에게 의견을 구하러 온 것이다. 나는 유 차장 업무수첩에 그림을 그려가며 어떻게 단계적으로 처리하면 될 지를 설명했다, 유 차장은 00공제회의 어쩔 수 없는 입장을 내게 설명했고, 나는 그 설명까지 감안해서 Plan B를 설명해줬다. 유 차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유 차장이 돌아가고 나자 박 과장이 내게 말했다. “변호사님, 이렇게 하시죠. 바쁘시겠지만 1달에 1-2번 정도 저희 공제회를 방문해서 1시간만 상담소를 열어 주세요. 현업 사람들이 물어볼 게 있어도 제가 빨리 빨리 답을 못 주니 답답해서 그런지 제게 잘 묻지도 않아요. 변호사님이 이렇게 즉답을 해 주시면 현업 담당자들은 엄청 좋아할 것 같습니다. 제가 미리 홍보를 해 놓을게요.”


#5


좋은 생각 같았다. 새로운 고문기업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관계를 맺은 고문기업과 더 탄탄하게 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그 이후 1달에 한 두 번 00공제회를 방문했다.


생각보다 반응은 뜨거웠다. 현업 담당자들이 줄을 서서 내 상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스피드하게 안건을 하나씩 처리해갔다. 그 자리에서 처리가 힘든 사건들은 검토 후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자문을 진행하니 사건 수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즉, 언젠가는 터질지도 모르는 일들을 사전에 점검하다보니 선제조치가 필요한 것들을 발견해서 가압류나 가처분 등을 제기할 수도 있었고, 소송을 할까 말까 현업 담당자가 고민하고 있는 건들도 내가 소송의 승패를 가늠하는 전망을 해주니 그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한 때는 태평양 로펌이 00공제회 소송사건 6-7건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했다.,


#6


의사들이 왕진(往診)간다고 하지 않던가. 실제 환자에게 가서 진료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의사들은 검사장비를 갖고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에 왕진에는 한계가 있으리라. 하지만 변호사는 머리만 들고 가면 된다. 판례 서치 같은 것은 로앤비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원격에서 가능하니까. 나는 이 왕진 방식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 이후 여러 고문기업들에게 수시로 방문하여 현장에서 현업들의 여러 고민을 해결해 주려 했다. 그 방식은 내 영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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