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변호사 시보를 왜 화장품 회사에서?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나는 2년간의 사법연수 과정을 거쳐야 했다. 1992년에는 서초동 사법연수원에서, 1993년에는 법원 6개월, 검찰 4개월, 변호사 2개월의 시보 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그 마지막 2개월, 변호사 시보 기관으로 '태평양'이 배정되었다.
인생의 전환점은 때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나에게 그 순간은 '태평양'이라는 이름과 함께 시작되었다.
"태평양? 왜 화장품 회사에서 변호사 수습을 하라는 거지?" 나는 의아해했다. 당시 ㈜태평양은 화장품 회사로 더 유명했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원래 화장품 회사이던 ㈜태평양은 2002년에 ㈜아모레퍼시픽으로 회사명을 바꾸었다. 따라서 1993년 그 당시만 하더라도 태평양은 화장품 회사로 훨씬 더 유명했었다.)
사법연수원 시절, 나는 판사보다는 검사가 되고 싶었다. 당시 우리 사법연수원 동기는 280명 남짓이었는데, 성적순으로 150등까지는 판사나 검사가 될 수 있었다. 성적이 좋은 분들 중에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바로 변호사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으니 본인이 원하면 판사나 검사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나 역시 공무원이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당연히 공직에 먼저 진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4개월간의 검찰 시보 생활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과연 검사가 내 적성에 맞을까?" 이 질문이 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검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던 방향성을 잃어버린 공허한 가슴을 부여안고 변호사 시보생활을 하러 가야 했다.
1993년 9월,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서소문의 신아빌딩을 찾았다. 고즈넉한 덕수궁 돌담길 옆에 위치한 빨간 벽돌 건물, 그곳에 당시 '법무법인 태평양'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깔끔한 인테리어와 분주히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대기업 사무실 같았다. 사실 지금와서 보면 그 당시 신아빌딩 사무실도 그리 양호한 상태는 아니었는데, 내가 그 직전 4개월을, 당시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가장 낙후된 시설 수준을 가진 부산지방검찰청에서 시보생활을 하고 온 터라 대비효과가 대단했다.
"여기 서동우 변호사와 한이봉 변호사가 있대." 같이 태평양으로 배정된 동기가 귀띔해주었다.
"정말? 그 유명한 분들이?"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 변호사님과 한 변호사님은 사법시험에서 거의 수석급으로 합격한 분들이었다. 사법시험 공부할 때 먼저 합격한 사람들의 합격기나 그들의 공부 노트를 고시 잡지를 통해 접하게 되는데, 위 두 분은 후배들에게 유명한 분들이었다.
"왜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 나는 궁금증을 안고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성적이 뛰어난 분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거의 정해진 루트였는데, 바로 변호사로 시작한다는 것이 의외였다.
태평양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당시 변호사 사무실은 변호사 방이 하나 있고, 홀에는 사무직원 2-3명이 일하고 있는 그런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당시 태평양은 약 30여명의 변호사와 20여명의 남녀직원들이 5개 층을 나눠서 쓰고 있었는데, 각 변호사 방마다 특색 있는 인테리어가 눈에 뛰었고, 말쑥한 변호사들과 직원들이 정신없이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검사의 길만을 고집하던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때로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 태평양은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여기서라면 다른 방식으로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생각은 점점 더 강해졌고, 나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리게 했다. 지금이야 법무법인 태평양은 아주 유명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법무법인'이나 '로펌'이라는 단어는 우리 같은 사법연수원생들에게도 무척이나 생소했다. 더구나 이름도 화장품 회사같은 '태평양'이라니.
하지만 그 생소함 속에서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대형 로펌의 체계적인 시스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일하는 모습, 그리고 국제적인 업무 환경.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법조인으로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주었다.
태평양에서의 4개월간 시보 생활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단순히 법률 지식뿐만 아니라, 팀워크의 중요성,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계발의 필요성 등을 깨달았다. 이런 경험들은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화장품 회사로 착각했던 그곳에서, 나는 법조인으로서의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치 잘못 들어간 가게에서 인생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태평양에서의 시보 생활은 나에게 예상치 못한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내 법조인 생활의 방향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이처럼, 태평양은 나에게 갑작스럽고도 생소하게 다가왔지만, 결과적으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