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태평양스러움'의 비밀을 찾아서
선배 변호사들은 신참인 내게 종종 이런 말을 건네곤 했다.
"조 변은 참 여러모로 태평양스럽구만. 하하!"
선배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태평양스럽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시간이 흐르먄서 '태평양스러움'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뜻을 하나둘 알아가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설명에 따르면 '태평양스러움'이란 이런 것이었다. 시골 출신이라 촌스러움이 묻어있고,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며 투박하다. 하지만 넉넉한 인간미와 우직함, 근성이 있다. 마치 한 편의 영화에 등장할 법한, 시골 마을의 든든한 마당쇠 같은 이미지랄까.
"태평양스러움은 우리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이네.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단단한 내면을 가진 우리 로펌의 본질을 보여주는 말이지."
선배의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몇 번 지나는 동안, 나는 태평양과 김앤장의 차이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 오후, 법원 앞 카페에서 우연히 김앤장 출신 친구를 만났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로펌의 분위기가 얼마나 다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야, 너희 태평양은 어때? 우리랑 많이 다르지?"
친구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확실히 달라. 우리는 좀 더 투박하달까? 하지만 그만큼 인간미가 넘쳐."
"그래? 우리는 좀 더 엘리트 집단 같은 느낌이야. 다들 명문대 출신에 법조 가문도 많고."
친구의 말을 들으며, 태평양과 김앤장의 차이를 정리해보았다. 김앤장 변호사들은 대부분 법조 가문 출신이었다. 아버지, 할아버지 모두 법조인인 경우도 흔했다. 학창시절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명문대를 거쳐 로펌에 입성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태평양 변호사들의 백그라운드는 사뭇 달랐다. 개천에서 용 난 경우가 태반이었다. 집안에 본인이 유일한 법조인인 경우가 허다했고, 출신 고등학교도 서울의 명문고보다는 지방의 무명고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차이는 겉모습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 김앤장 변호사들은 말끔하게 차려입은 듯한 단정한 수트 차림이 일품이었다. 마치 로펌만의 드레스 코드가 있는 듯했다. 반면 태평양 변호사들의 옷차림새는 좀 달랐다. 소위 '태평양스러움'이 배어 있달까. 무심하게 걸친 양복, 축 쳐진 어깨선. 밋밋하다면 밋밋한 그런 모습들이었다.
카페를 나서며 친구와 헤어질 때, 그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넌 정말 태평양스럽다니까. 그 투박한 매력이 꼭 너 같아."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고마워. 그 말이 칭찬으로 들리네."
시간이 흐르면서 '태평양스러움'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갔다. 그것은 단순히 외모나 말투가 아닌, 태평양만의 독특한 문화였다.
첫째는 '가족'같은 분위기였다. 어느 날 저녁, 야근을 하다 우연히 사무실에 남아계신 이재식 대표변호사님과 마주쳤다.
"오, 조 변호사. 아직도 일하고 있나?"
"네, 대표님. 내일 재판 준비 중입니다."
"그래? 고생이 많군. 자, 이리 와서 차 한잔 하지."
이 대표님과 차를 마시며 나눈 대화는 마치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같았다. 업무 이야기부터 개인적인 고민까지, 편안하게 나눌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 덕분일까. 내가 태평양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이직이나 퇴사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둘째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문화였다. 내가 처음 경험한 태평양의 전체회의는 충격 그 자체였다. 4-5년차 변호사들이 15년, 20년 경력의 파트너 변호사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안건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 로펌의 가치에 어긋나요!"
젊은 변호사의 격앙된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선배 변호사들은 오히려 그의 의견을 경청했다.
"자네 말이 일리 있어.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안해보게."
이것이 태평양식 민주주의의 진수였다. 대표 변호사라 할지라도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며 합의를 도출해야만 했다.
셋째, 돈보다는 '정도'를 우선시하는 자세였다. 어느 날, 거액의 수임료를 제시한 의뢰인의 사건을 거절하는 선배 변호사를 보았다.
"하지만 선배님, 이 정도 금액이면..."
"아니야. 아무리 큰돈이 된다 한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반한다면 그 사건은 맡지 말아야 해."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한 번 잃은 원칙은 되찾기 힘들다네."
이 말은 내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넷째, 송무에 있어서의 투지와 근성이다. 재미있게도 당시 법조계에서는 '김앤장은 자문, 태평양은 송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태평양에는 송무에 일가견이 있는, 말 그대로 '송무 전문 변호사'들이 즐비했다.
다섯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여성 변호사들이 있었다. 그 중 황보영 변호사는 태평양 최초의 여성 파트너로, 많은 후배 여성 변호사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황 변호사님,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실 수 있었나요?"
신입 여성 변호사가 물었다. 황 변호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죠. 내 실력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그녀의 눈빛에서 불굴의 의지가 느껴졌다.
시간은 흘러 태평양은 이제 법조계를 대표하는 로펌 중 하나로 성장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태평양을 태평양답게 만드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아니라, 바로 '태평양스러움'이라는 것을.
태평양스러움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