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의 흔적: 90년의 기억이 깨어지다
머스트노우 VIP룸. 김하영이 파손된 도예 작업대의 사진을 내밀었다. 90년의 역사가 담긴 증거물이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도심의 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전날 박 과장이 전해준 사건 개요가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8월 15일 오전 11시경, S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도예가 김하영의 작업실 이전 작업 중 90년 된 도예 작업대를 2층 계단에서 추락시켜 파손. 작업대 수리 불가 판정. 보험사는 일반 동산 기준 300만원 배상 제시. 의뢰인 측 거부.‘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서류가방만 매만지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할아버지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새 작업실로 옮기려던 참이었는데..."
김하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서류가방을 열었다. 1932년 증조부가 처음 만든 작업대의 사진이었다.
"이게 처음 작업대를 만드셨을 때의 사진입니다." 김하영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내밀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기록 사진이었다. 한 장인의 굳은 표정이 세월을 뛰어넘어 나를 응시했다.
"아버지께서도, 저도 이 작업대에서 첫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김하영의 손가락이 빛바랜 사진 모서리를 무의식적으로 구겼다 폈다 했다. 휴대폰에 담긴 사고 현장 사진을 보여주었다. 계단 아래 작업대는 완전히 파손된 상태였다.
허용일 변호사가 "제가 보기에는 말이죠..."라며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이 민법전을 스쳐 지나갔다. 커피 잔에 비친 사진 속 장인의 눈빛이 이 사건이 단순한 손해배상을 넘어섬을 말해주었다. 작업대의 가치는 나무 재료가 아닌 90년간 축적된 장인정신에 있었다.
#2 가치의 대립: 보상과 보존 사이에서
다음날 아침 회의실. 전자게시판에는 화재 현장 사진과 보험사의 공문이 나란히 띄워져 있었다. Morning Brief의 분위기는 묘하게 엇갈렸다.
양희범 변호사가 책상 위 판례집을 뒤적이며 말했다. "법리적으로 보자면, 운송계약상 손해배상 사안입니다. 이삿짐센터의 과실은 명백해 보입니다만, 배상액 산정이 쟁점이 되겠죠."
"하지만 선배님," 허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이건 단순한 운송물 파손이 아닙니다. 4대에 걸친 장인정신의 증거물이자...“
박 과장이 태블릿을 넘기며 말했다. “계약서 제8조를 보시죠. 특수 운송물 조항입니다. 계약 체결 시점에 이삿짐센터는 이 작업대의 특별한 가치를 충분히 인식했습니다. 계약서에는 '문화재급 도예 작업대, 취급 주의 요망'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담당자가 이를 확인하고 서명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보험사는 일반 동산 기준으로만 접근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별도의 입증이 필요합니다.”
"보험사 제안은 300만원입니다." 양 변호사가 안경을 고쳐쓰며 물었다. "최고급 작업대 가격의 3배라고 하는데, 이게 과연 적정한 보상일까요?"
허 변호사는 작업대의 구조도를 그렸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파손된 작업대의 구조와 특징들이 하나씩 그려졌다.
"단순한 물건 파손 사고로 볼 수는 없습니다." 허 변호사의 손이 스케치북 위를 움직였다. "이 작업대는 도예 장인의 혼이 깃든 도구입니다. 무형문화재 보호법의 취지를 보더라도..."
나는 창가에서 돌아섰다. “우리의 Triple Check System으로 접근해보죠. 첫째, 문화재보호법상 가치 평가의 법리 검토를 양 변호사가 맡고, 둘째, 운송계약상 특수물품 취급 관련 판례 분석을 허 변호사가, 셋째, 무형문화재 제도와의 연계성은 제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각자 24시간 안에 1차 검토 결과를 공유하죠."
양 변호사는 유사 판례 검토를, 박 과장은 문화재청 문의를, 허 변호사는 현장 조사를 맡기로 했다. 시계가 10시를 가리켰다.
#3 장인의 약속: 복원의 시작
김포의 한 목공소. 윤상철은 작업실에서 나무 샘플을 검토했다. 좁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사이로 톱밥이 반짝였다.
"이 사진 속 작업대가 기억나시나요?" 허 변호사가 사진을 내밀자 윤상철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찌 모르겠소. 22살 때부터 그 작업대 앞에서 스승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지요." 윤상철의 손이 사진을 어루만졌다. "매일 아침 작업대를 닦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어요. 한다고 하시면서..."
윤상철은 자신의 작업대 앞으로 걸어가 손을 얹었다. "방금 만진 이 느낌, 90년 된 그 작업대와 똑같습니다."
그때 양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허 변호사, 중요한 자료를 찾았습니다. 1985년 월간〈전통공예〉기사예요." 찾아낸 기사는 귀중한 단서였다. "이 작업대는 현재 1985년 문화재보호법 시행 당시 등록문화재 2호로 검토되었던 유물입니다. 당시 심사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그럼 왜 등록이 안 된 거지요?" 허 변호사가 물었다.
잠시 후 박 과장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문화재청 기록에서 당시 신청이 중단된 이유를 발견했다고 했다. IMF 외환위기로 인한 행정절차 지연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이삿짐센터 보험사의 답변은 냉정했다. "등록문화재가 아닌 이상, 일반 운송물 파손 보상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현재는 수리 불가능한 상태라..."
이 이야기를 들은 윤상철은 새로운 제안을 했다.
"내가 복원하겠습니다. 스승님의 정신을 이어받은 제자로서... 그리고 이 나라 마지막 목공예 장인 중 한 사람으로서..."
허 변호사의 눈이 빛났다. 문화재보호법상 '전통문화의 계승자' 조항이 떠올랐다. 복원 과정을 기록하며 작업대의 문화적 가치를 입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 문화의 증인: 시간을 되살리다
작업대는 90년간의 사용 흔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문화재보호법은 역사적 가치의 보존을 규정한다.
머스트노우 VIP룸. 나는 윤상철의 복원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틀었다. 이삿짐센터와 보험사 담당자들의 시선이 화면에 고정됐다.
"이 작업대는 단순한 운송물이 아닙니다." 내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윤상철의 거친 손길을 보며, 윤상철의 복원 작업은 단순한 수리가 아닌 장인정신의 계승이라는 점을 느꼈다.
화면 속에서 윤상철의 거친 손이 나무 하나하나를 매만졌다. "이 부분은 도공이 앉을 때 무릎이 닿는 자리입니다. 90년 동안 네 분의 체온이 스며들어 나무결이 휘어졌죠. 이런 흔적은 새 나무로는 만들 수 없습니다.“
양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판례는 물건의 가치를 평가할 때 역사성과 문화성을 중요한 요소로 봅니다. 특히 이런 유형의 전통 공예 도구는..."
허 변호사가 이어받았다.
"더구나 파손 전 운송 과정에서 의뢰인은 이 작업대가 4대째 이어져 온 도예 장인의 핵심 작업도구이며, 1985년 문화재 등록을 시도했던 역사적 유물이라는 점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이삿짐센터 담당자는 이를 듣고 특수 운송물 란에 직접 체크하고 서명했으며, 문화재급 작업도구라는 점을 운송계약서에도 명시했습니다."
박 과장이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김과장이 보낸 검토의견서에 따르면, 이 작업대는 '무형문화재 전승용구'로서의 가치 평가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
이삿짐센터 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이삿짐센터 대표는 과실을 인정했다. “계약 당시 담당 직원이 문화재급 작업도구라는 설명을 들었고...”.
동석했던 보험사 법무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VIP룸의 조명이 그의 안경에 반사되어 날카로운 빛을 만들었다, 특수취급 물품으로 분류했음에도 이런 사고가 발생한 점, 저희의 중과실을 인정합니다. 다만 보험사 기준으로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내가 말을 끊었다. "윤상철 선생님의 복원 작업은 단순한 수리가 아닌 무형문화재 전승자의 기술 계승 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이미 이 부분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고요.“
보험사 법무팀장이 문화재청 의견서를 검토하는 동안, 윤상철의 복원 계획서가 담긴 태블릿이 그의 앞으로 제시되었다. 화면에는 1932년부터 2024년까지의 작업대 이력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4대에 걸친 도예 기법의 발전과정, 작업대에 새겨진 장인들의 손자국 분석, 1985년 문화재 등록 심사 당시의 평가서.
보험사는 30분간의 검토 끝에 최종 합의안을 제시했다:
- 물적 손해배상금: 3,000만원
- 복원 비용: 실비 전액(예상 2,200만원)
- 복원 기간 동안의 영업 손실 보상: 월 500만원
- 특별 조항: 윤상철의 복원 과정을 문화재청 공식 기록물로 등재
김하영은 이 합의안에 서명했고, 보험사는 다음 날까지 배상금 전액을 지급하기로 했다.
#5 정성의 계승: 새로운 시작
한 달 후, 복원된 작업대 앞에서 나는 김하영과 윤상철을 만났다. 복원된 작업대의 각인이 선명했다. 90년 된 나무의 깊은 결이 오후 햇살에 반들거렸다.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윤상철이 작업대를 쓰다듬었다. "다만 한 군데를 더했습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2024년 8월, 스승의 뜻을 잇다.'
허 변호사의 유튜브 채널에는 "장인정신과 법의 경계에서"라는 제목의 에피소드가 올라갔다. 댓글들이 이어졌다. 문화재청에서는 등록문화재 지정 절차가 시작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Morning Brief에서 나는 양 변호사에게 물었다. "이번 사건이 선례가 될 수 있을까?"
"네, 대표님." 그가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운송물 가치 산정에서 문화재적 가격을 인정받은 첫 사례가 될 겁니다. S이삿짐센터도 특수 운송물 취급 기준을 새로 만들었고요.
"
박 과장이 덧붙였다. "이번 주 법률신문에서도 이 판결을 다룬다고 합니다. '문화재적 가치의 법적 보호 범위 확대' 관점에서요."
김하영의 새 작업실에서는 첫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청자를 본떠 만든다고 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90년의 시간이 흙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작업대 위로 떨어지는 햇살이 마치 오래된 사진 속 증조부의 모습처럼 따스했다.
정의는 때로 시간의 무게로 측정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게를 미래로 전달하는 매개가 된다.
덧.
"工欲善其事,必先利其器。君子務本,本立而道生。"
"장인이 그 일을 잘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 연장을 날카롭게 해야 하고,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論語』 「衛靈公」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