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파, 히말라야의 숨은 영웅들
고도 8,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준엄한 벽 앞에서, 세르파들은 등반의 역사를 함께 써왔다. 16-17세기 티베트 동부에서 네팔로 이주한 세르파(Sherpa) 민족은, 히말라야의 역사와 함께 진화해온 산악인들이다.
1953년 5월 29일, 텐징 노르게이가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을 때, 세르파는 단순한 짐꾼에서 등반의 핵심 파트너로 그 위상이 격상되었다. 이는 세르파 역사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세르파의 고산 적응 능력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 2017년 네이처 지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세르파들의 미토콘드리아는 저산소 환경에서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며, EPAS1 유전자 변이를 통해 고산 적응력을 갖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수천 년에 걸친 고산 서식의 결과다.
현대의 세르파는 루트 개척부터 고정로프 설치, 캠프 구축까지 등반의 전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쿰부 빙폭을 관리하는 "아이스 닥터스"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등반 구간을 책임지는 전문가들이다. 2023년 기준, 공식 등록된 등반 세르파는 약 400명으로, 이들 중 50명 이상이 국제산악가이드연맹(UIAGM)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세르파들의 현실은 여전히 위험과 맞닿아 있다. 2014년 4월 18일 쿰부 빙폭에서 발생한 사고로 16명의 세르파가 목숨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네팔 정부는 세르파의 생명보험 한도를 기존 1만 달러에서 15만 달러로 상향 조정했고, 최저 임금제를 도입했다. 현재 에베레스트 등반 시즌 기준 세르파의 평균 수입은 5,000-10,000달러 수준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세르파 사회의 현대화다. 쿰부 지역의 중심지 남체 바자르에는 등반 장비점과 카페, 인터넷 시설이 들어섰고, 젊은 세대들은 카트만두와 해외에서 교육을 받는다. 2022년 기준, 쿰부 지역 청년의 약 30%가 고등교육을 받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GPS와 기상 예보 앱의 도입으로 등반 환경은 개선되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 감소는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쿰부 빙하는 지난 30년간 약 100m 후퇴했으며, 이는 루트 개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 세르파의 활약도 눈부시다. 2023년 기준 40명 이상의 여성 세르파가 활동 중이며, 라키 데키 세르파는 2023년 에베레스트를 여섯 번째 등정하며 여성 세르파 최다 등정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세르파들의 전문성은 등반 성공률에서도 입증된다. 2022년 네팔 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세르파 동행 시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률은 52%, 비동행 시는 23%를 기록했다. 특히 앙 리타 세르파는 2023년 27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며, 인류 역사상 최다 등정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히말라야의 수호자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전문 등반가로 발전한 세르파들. 이들은 이제 단순한 보조자가 아닌, 히말라야 등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기후변화의 위협, 상업적 등반의 증가, 젊은 세대의 진로 다변화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세르파들의 전문성과 헌신은 히말라야 등반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다.
"산은 우리의 어머니이자 스승이다."
- 앙 리타 세르파, 세계 기록 보유자 (27회 에베레스트 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