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생이야기> 참치 해체 장인 김도현의 하루
2024년 11월 23일 토요일, 비바람이 몰아치는 흐린 새벽
새벽 4시, 노량진 수산시장에 발을 내디디자 짠내 섞인 비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손끝은 차가운 공기에 얼어붙었고, 상인들의 거친 외침이 아직 잠에서 덜 깬 머리를 흔들어 깨웠다. 손에 쥔 칼의 차가운 금속 감각이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오늘은 150kg짜리다."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숨을 골랐다. 발밑의 미끄러운 바닥, 입김에 섞인 커피의 씁쓸한 뒷맛—이 모든 게 익숙하면서도 매일 새롭다.
15년 전, 처음 칼을 들던 날이 떠오른다. 손이 덜덜 떨려 참치 살을 망쳐놓고 아버지께 혼쭐이 났었다. "도현아, 칼은 네 손의 연장이다. 겁내면 다친다." 그 말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이제 손은 차분하지만, 반복되는 새벽마다 쌓인 피로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그래도 이곳에서 나는 참치해체장인, 김도현이다.
경매의 긴장, 칼날의 춤
오전 5시, 경매가 시작됐다. "150kg 참치, 2,500만 원부터!" 경매사의 목소리가 시장을 울렸다. 손을 들며 낙찰을 기다리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한 마리가 내 한 달 수입의 절반을 좌우한다. 결국 3,000만 원에 낙찰. 한국 수산물 유통 보고서(2023)에 따르면, 참치해체장인의 평균 연봉은 약 5,000만 원. 하지만 손목 부상 위험은 일반인의 3배, 보험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칼끝에 내 생계가 걸려 있다는 사실이 날 더 예리하게 만든다.
해체 쇼가 시작되자 손님들이 둘러섰다. 칼을 들고 참치의 거대한 몸통을 마주하니 손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오토로’—참치 뱃살 중 가장 기름진 부위—를 손질할 때마다 손에 묻는 기름기가 묘한 위로가 된다. 고객들은 이를 ‘참치의 캐비어’라 부르며 감탄하지만, 나는 칼날이 살을 스치는 소리에만 집중한다. 시각, 청각, 촉각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고객의 요구, 내 마음의 균열
오전 10시, 단골 셰프가 다가왔다. "도현 씨, 오늘 오토로는 좀 더 얇게 썰어줘요."
"얇게 썰면 식감이 달라지는데…" 속으로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근데 손목이 좀 뻐근해서 천천히 할게요."
"아이고, 몸조심해요. 당신 없으면 우리 가게 망해요." 셰프의 농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문득 미래가 스쳐갔다. 10년 뒤에도 내가 이 칼을 들고 있을까? 아이들이 "아빠가 참치 장인!"이라 자랑하던 목소리가 희미해질까? 숙련된 참치해체장인은 일본에서조차 10년 이상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세월이 내 몸을 갉아먹는 것도 사실이다.
새벽의 고요, 그리고 나의 칼
오후 2시, 해체 쇼를 마친 시장은 조용해졌다. 손목을 주무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칼을 닦던 순간의 느낌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참치는 해체되어 누군가의 식탁으로 갔고, 나는 또 하루를 보냈다. 이 직업은 나를 장인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새벽마다 나를 깨우는 시계가 됐다. 그래도 괜찮다. 칼날 끝에서 빛나는 참치 살처럼, 내 인생도 누군가에겐 값진 한 조각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새벽의 장인들을 조금 더 알아줬으면 한다.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수산 시장 종사자의 70%가 사회적 인식 부족을 호소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고요 속에서 땀 흘리는 이들이야말로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나의 칼끝은 오늘도 그 증거를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