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서 피는 꽃, 앙스트 블뤼테

by 조우성 변호사

불안 속에서 피는 꽃, 앙스트 블뤼테


막다른 골목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사업은 기울고, 돈은 바닥나고, 관계는 틀어졌다. 선택지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때 뭔가가 피어난다. 마지막 힘을 쥐어짠다. 발버둥 친다. 죽기 살기로 움직인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때가 터닝 포인트였다. 가장 절박했을 때, 가장 강했다.


# 식물이 알고 있는 것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이유가 뭘까. 예쁘자고? 아니다. 씨앗을 만들려고. 다음 세대를 남기려고. 종족을 보존하려고. 그런데 가뭄이 온다. 병충해가 덮친다. 추위가 몰아친다. 식물은 죽어간다.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죽어가는 식물이 꽃을 피우는 거다. 남은 힘을 전부 끌어모아서. 잎은 시들어도 꽃은 핀다. 줄기가 말라비틀어져도 꽃눈만큼은 튼다. 마지막이니까. 이게 정말 마지막 기회니까.


독일어로 이걸 '앙스트블뤼테(Angstblüte)'라고 한다더라. 불안 속에 피는 꽃. 공포가 만든 개화. 절박함이 꽃을 피운다. 과학자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어쩌고 유전자가 어쩌고 설명하지만, 결국 본질은 하나다. 죽기 전에 씨앗이라도 남기자는 거다. 필사적이다.


# 우리도 그렇게 핀다


사람도 그렇다. 편할 때는? 안 움직인다. 시간 많다고 생각한다. 내일 하면 되지. 다음 달에 해도 되지. 미룬다. 늘어진다. 그러다 위기가 온다. 진짜 위기.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그때 달라진다. 잠을 줄이고, 쓸데없는 걸 버리고, 평소에 못 하던 걸 해낸다.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한다. 어떻게 했는지 나중에 생각해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해냈다. 그게 앙스트블뤼테다. 절박함이 피운 꽃.

'쇼생크 탈출'의 앤디가 그랬잖나. 억울하게 갇혔다. 평생 나올 수 없다. 그런데도 포기 안 했다. 몇십 년을 파고 또 팠다. 희망이라는 꽃을 피웠다. 절망 속에서.

주변에도 있다. 빚더미에서 일어선 사람. 병을 이겨낸 사람. 깨진 관계를 회복한 사람. 물어보면 다 비슷하게 말한다. "그때가 제일 힘들었는데, 그때 뭔가 터졌어요." 절박했으니까.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었으니까.


# 위기를 대하는 법


위기가 오면 어떻게 하냐고. 위기를 기다리란 소리는 아니다. 다만 위기가 왔을 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두면 된다.


인정하는 것부터다. 지금 힘들다는 걸. 절박하다는 걸. "괜찮아"라고 애써 웃지 않는다. 힘들면 힘든 거다. 그걸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집중한다. 불필요한 걸 다 내려놓는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게 뭔가, 그것만 본다. 에너지를 여기저기 쪼개지 않는다. 식물처럼. 꽃 피우는 데만 온 힘을 쏟는.


그리고 움직인다. 생각만 하지 말고, 계획만 세우지 말고. 작게라도 시작한다. 한 걸음이라도 떼본다. 움직이면 뭔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위기는 온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위기 속에서 뭔가가 핀다. 평소엔 몰랐던 힘이 나온다. / 식물은 죽기 직전에 꽃을 피운다. / 우리도 그렇다. 절박할 때, 가장 아름답게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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