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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을 당기는 순간, 협상의 균열이 시작된다

by 조우성 변호사

[몸짓의 언어] 옷깃을 당기는 순간, 협상의 균열이 시작된다


회의실 공기가 팽팽하다. 투자자가 질문을 던지고, 창업가가 답변을 준비하는 그 순간. 창업가의 오른손이 목덜미 쪽으로 올라간다. 검지와 중지가 셔츠 깃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며 옷깃을 앞으로 잡아당긴다. 1초도 안 되는 동작이다.

손이 옷깃을 당기는 순간 목 앞부분에 작은 공간이 생기고, 그 사이로 실내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이내 손은 다시 테이블 위로 돌아오고, 창업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을 이어간다.

/ 그 1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 체온이 말해주는 것들


인간의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계가 작동한다. 편도체가 위협을 감지하면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을 가동하고,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혈류에 방출된다. 심박수가 빨라지고, 혈관이 확장되며, 체온이 오른다. / "열 받는다"는 말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는 얘기다. /

목 부위는 특히 예민하다. 경동맥과 경정맥이 지나가는 곳이라 혈류량이 많고, 체온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목은 가장 취약한 급소였다. 포식자의 공격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부위. 그래서 이 부위의 불편함에 대한 감각은 유독 예민하게 발달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체온 상승을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느끼는 곳이 바로 여기다.

FBI 행동분석가 조 나바로는 옷깃 통풍을 "진정 행동"의 일종으로 본다. 뇌가 신체의 경보 신호를 감지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자동으로 명령을 내린다. / 중요한 건 이 행동이 의식적 통제 이전에 일어난다는 점이다. / 생각보다 빠르다. 통제하기도 어렵다.


# 협상 테이블의 진실 탐지기


M&A 협상에서 매수 측이 가격을 제시하는 순간, 매도 측 CEO가 옷깃을 당긴다. 그는 그 가격에 불만족스럽거나, 더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자신이 제시한 조건에 상대방이 옷깃을 당긴다면? 그 조건이 부담스럽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신호다.

연봉 협상도 마찬가지다. 후보자가 희망 연봉을 말하는 순간 채용 담당자가 옷깃을 당긴다면, 그 금액이 회사 예산을 초과했다는 뜻이다. 후보자가 회사 측 제안을 듣고 이 행동을 보인다면? 기대에 못 미치는 제안이라는 무언의 표현이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를 보면, 잡스는 협상에서 상대방의 미세한 신호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 지점에서 협상의 레버리지를 확보했다. 옷깃 통풍 같은 비언어적 신호가 바로 그 '불편함의 지점'을 드러낸다.


# 당신의 손이 당신을 배신할 때


문제는 이게 양방향이라는 거다. 당신이 상대의 신호를 읽을 수 있듯이, 상대도 당신의 신호를 읽을 수 있다. 고압적인 질문을 받거나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옷깃을 당긴다면, 당신의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신을 관찰하라. 어떤 상황에서 옷깃을 당기는지 알아야 한다. 거울 앞에서 스트레스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거나, 중요한 회의를 녹화해서 복기해보라. 자기 인식이 통제의 시작이다.

대체 행동을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옷깃을 당기고 싶은 충동이 들 때, 대신 심호흡을 하거나 물 한 모금을 마셔라. 스트레스 반응을 억제하는 동시에 상대에게 침착함을 신호한다.

환경도 중요하다. 중요한 협상 전에는 실내 온도를 확인하고, 꽉 끼는 옷은 피하라. 물리적 불편함이 줄어들면 생리적 스트레스 반응도 완화된다.

상대의 신호는 전략적으로 활용하되, 노골적으로 지적하지는 말라. 상대가 옷깃을 당기는 순간을 포착했다면 그 지점이 협상의 핵심이다. 그 주제를 더 깊이 파고들거나, 전략적으로 양보의 제스처를 취해 신뢰를 구축하라.


# 보이지 않는 대화를 지배하라


비즈니스는 언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십억 원이 오가는 협상 테이블에서, 승진을 결정하는 임원 면접에서, 진짜 결정은 말과 말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찰나의 몸짓 속에서 이루어진다.

/ 옷깃을 당기는 1초는 천 마디 말보다 솔직하다. / 당신이 그 1초를 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보이지 않는 대화를 지배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당신의 1초를 통제할 수 있다면, 당신은 상대가 읽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된다.

다음 회의에서 당신의 손이 목덜미로 향하는 순간을 기억하라. / 그 순간이 바로 당신의 진실이 새어 나가는 균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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