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포커페이스를 무너뜨리는 15도의 진실

by 조우성 변호사

발끝의 배신: 포커페이스를 무너뜨리는 15도의 진실

승진 면담이 한창이다. 당신은 지난 1년간의 성과를 조리 있게 설명하고 있고, 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의 눈을 바라본다. 그의 상체는 완벽하게 당신을 향해 있고, 팔은 테이블 위에 편안히 놓여 있다. 미소까지 짓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당신이 느끼는 미묘한 위화감의 정체는 바로 그의 발끝이다. 그의 오른발 끝은 당신이 아닌, 회의실 출입문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각도로 따지면 약 15도. 그 작은 각도가 말하고 있다. "이 대화,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몸은 거짓말해도 발은 진실을 말한다


발끝 방향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정직한 신호다. 이를 '하체 우선성의 법칙(Lower Body Priority)'이라 부른다. 인간의 뇌는 상황에 따라 다층적으로 반응한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전전두피질은 얼굴 표정과 상체 제스처를 통제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웃으면서 인사해", "바른 자세로 앉아" 같은 교육을 받으며 상체 언어를 의식적으로 관리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하체, 특히 발은 다르다. 발은 편도체와 직접 연결된 가장 원시적인 도피 시스템의 일부다. 위협이나 불편함을 감지하면 교감신경계가 즉각 활성화되고, 코르티솔 수치가 상승하며, 신체는 무의식적으로 '탈출 준비 자세'를 취한다. 이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이 바로 발이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수십만 년간 형성된 생존 메커니즘이다. 사바나에서 포식자를 만났을 때, 우리 조상들의 생존은 0.1초의 반응 속도에 달려 있었다.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발이 먼저 도망칈 방향을 가리켰고, 몸이 따라갔다. 현대의 회의실은 사바나가 아니지만, 우리의 뇌간은 여전히 원시 시대 프로그래밍으로 작동한다.

MIT 미디어랩의 2017년 연구에 따르면, 대화 참여자의 발 방향은 그들의 실제 관심도와 87%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피험자 스스로는 자신의 발 위치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얼굴 표정은 의식적으로 관리해도, 발끝은 무의식의 정직한 지침이 되어버린다.


5억 원짜리 발끝의 교훈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 CEO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는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위해 세 군데 VC를 만났다. 첫 번째 펀드의 파트너는 1시간 내내 열정적으로 질문했고,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 내내 상체는 완벽하게 전방을 향했다. CEO는 "이건 성공이다"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가 놓친 것이 있었다. 그 파트너의 발끝은 회의 시작 15분 만에 이미 출구를 향했고, 다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결과는 정중한 거절이었다.

두 번째 펀드는 달랐다. 파트너는 다소 무표정했고, 질문도 적었다. 그런데 그의 발끝은 처음부터 끝까지 CEO를 정면으로 향했다. 더 나아가 회의 중반 이후, 그는 자신의 의자를 5cm 정도 앞으로 당겼다. 이는 몰입도가 증가한다는 신호다. 결과? 3주 후 5억 원 투자 확정. CEO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중요한 건 그의 입이 아니라 발이었다."

이 사례는 단순히 투자 유치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연봉 협상에서 인사팀장의 발끝이 책상 아래로 당신이 아닌 옆을 향한다면? 당신의 요구가 수용되기 어렵다는 무언의 신호다. 고객 미팅에서 상대방이 당신의 제안서를 보는 동안 발이 점점 출입구 쪽으로 회전한다면? 제안 내용에 관심이 없거나 이미 마음속으로 거절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발.jpg


탈출구를 찾는 발, 기회를 찾는 당신


상대방의 발끝이 당신이 아닌 다른 곳, 특히 출입구나 열린 공간을 향한다면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그 신호를 직접 지적하지 마라. "왜 발을 그쪽으로 향하세요?"라고 물으면 상대는 당황하고 방어적이 된다. 대신 대화의 흐름을 바꿔라. 지금 하던 이야기가 지루하거나 압박적일 수 있다. "잠깐, 커피 한 잔 하시죠" 같은 짧은 휴식 제안이나,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논의하고, 먼저 X에 대해 얘기해볼까요?"처럼 주제를 전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둘째, 회의 시간을 재검토하라. 발끝이 도망치고 싶어 할 때는 대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내용이 지루하거나 관련성이 낮다고 느낄 때, 둘째는 물리적으로 피곤하거나 다른 약속 시간이 임박했을 때다. 만약 중요한 협상이라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 이어가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는 편이 억지로 끌고 가는 것보다 낫다.


당신 자신의 발은 어떤가? 다음 회의에서 한번 의식적으로 관찰해보라. 지루한 보고를 들을 때, 불편한 질문을 받을 때, 당신의 발끝이 무의식적으로 출구를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정상이다. 문제는 상대방도 그 신호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발끝을 상대방 쪽으로 유지하라. 이것만으로도 당신의 몰입도와 존중의 신호가 전달된다.

리더라면 팀 회의에서 구성원들의 발 방향을 슬쩍 관찰해보라. 3명 중 2명의 발이 출구를 향한다면, 그 회의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의제를 바꾸거나, 회의 방식 자체를 재설계할 시점이다. 발끝은 참여자의 숨겨진 투표용지다. 그들의 입은 "네, 좋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발은 "빨리 끝났으면"이라고 외치고 있다.

다음번 중요한 미팅에서 한 가지만 기억하라. 상대의 눈이 아니라 발을 보라. 15도의 진실이 5억 원의 기회를, 혹은 실패를 결정할 수 있다.


발끝.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눈을 가린 순간, 협상 테이블은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