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나는 진정 자유로운가?’
특별히 구속된 바 없이, 배고플 때 밥 먹을 수 있고, 잠자고 싶을 때 잠잘 수 있으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칸트의 설명에 따르면, 위와 같은 근거만으로는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논리를 전개하는,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자로 알려진 칸트.
칸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도덕’의 개념은 ‘자유’로부터 나온다.
칸트에게 있어서 ‘진정한 자유’란 무엇을 의미할까?
칸트는 자신의 저서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에서 최고의 도덕적인 원칙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진정한 자유’의 개념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자유’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거나 원하는 바를 방해받지 않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칸트가 생각하는 자유의 개념은 더 엄격하고 까다롭다.
그러면 자율적인 행동이란 무엇인가? 이는 곧, 내가 나에게 부과한 원칙에 따른 행동을 의미한다.
좀 더 쉽게 말해서 ‘물리 법칙’이나 ‘인과 법칙’처럼 외부에 의해서 주어진 법칙에 기초한(따른) 행동이 아니라 내가 이성적으로 나에게 명령한 원칙에 따른 행동을 의미한다.
당구공을 손에 쥐고 있다 놓았을 때 당구공은 자연 법칙에 따라 바닥에 떨어지고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당구공이 자유로이 행동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동물처럼 우리가 쾌락을 좇을 때, 즉 욕망을 채우고 고통을 피하려 할 때 우리는 진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 우리는 기호(嗜好)와 충동의 노예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배고픔이나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은 자연적 필연성(외부적인 강제)에 따른 행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율에 반대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타율’이다.
인간이 기호나 쾌락을 좇아 행동하는 한,
우리는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을 실현할 ‘수단’으로서 행동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의 주체가 아니라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타율적으로 의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반면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목적 그 자체를 위해 어떤 일을 하게 된다.
자율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의 도구가 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말은 개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본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나는 진정 ‘존재’하고 있고
과연 나는 진정 ‘자유’로운지 생각해 보게 된다.
추가 : “스피노자는 감정을 능동적 감정과 수동적 감정, 곧 행동과 격정으로 구별한다. 능동적 감정을 나타낼 때 인간은 자유롭고 자기 감정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수동적 감정을 나타낼 때 인간은 쫓기고 자기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동기에 의해 움직여지는 대상이 된다”
- 에리히 프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