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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Sep 28. 2015

어떤 외길 인생(상수아재 이야기)

“우성아. 아니, 조변호사. 오랜만이다. 외할머니한테 네 전화번호 물어 보고 걸었다.”


“아이구 아재. 이게 얼마만입니꺼. 연락도 못 드리고 죄송합니더.”     


추억의 저편에만 있던 상수 아재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온 것은 2010년 겨울 무렵.


아재와의 추억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모님이 맞벌이 중이라 외갓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외갓집에는 외할머니를 ‘고모’라고 부르던 ‘상수 아재’가 있었다. 당시 어떤 사정 때문에 아재가 외갓집에서 기거했는지 알 수 없으나 하여튼 제일 골방이 아재의 방이었다.     


“아재, 이번에는 호랑이하고 마징가 제트가 싸우는 그림 그려줄래?”

“그래? 한번 그려볼까?”     

아재는 연필과 크레파스만 갖고도 못 그리는 그림이 없었다. 덕분에 난 꽤 호화로운 나만의 

‘화첩(畫帖)’을 소장하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 수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아재가 힘들게 객지생활 했다는 정도 정황은 외할머니를 통해 들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우성아, 나 좀 도와주라. 대신 그림은 네가 원하는 대로 다 그려줄게.”


이상한 잡초들을 짊어지고 와서 며칠간 자기 골방에 틀어박혀 뭔가를 궁리하던 아재가 불쑥 내게 꺼낸 말. 아재가 그림 많이 그려준다니 나야 환영할 일이었다.     


아재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근처 보리밭. 보리농사 뒤에 남은 ‘보릿대’를 농부들로부터 얻어내서 큰 포대에 담아 외갓집으로 짊어지고 왔다.      


“아재, 이걸로 뭐할건데?”


“보릿대를 활용하면 나전칠기 같은 멋진 장식장 등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연구했다.”    


외할머니는 집 더러워진다고 역정을 내셨다. 

“어디서 쓸 데도 없는 보릿대를 이리 많이 갖고 오노?”     



나는 열심히 아재를 도왔기에 그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했고, 그로 인해 내 화첩(畫帖)은 점점 풍부해졌다. 

아재는 보릿대를 키 높이만큼 쌓은 뒤 씻고 잘라내면서 뭔가를 열심히 만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재는 수원으로 떠났다.      


외할머니로부터 간간히 아재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상수가 어릴 때부터 그리 고생을 하더만 그래도 밥은 묵고 사는갑다. 추석이라고 내한테 용돈을 보내왔네. 기특하다.”

“상수가 결혼한다카네. 아이구 자슥. 수원 쪽에 집을 얻었다고 하네.”

“상수가 요새 대기업에 강의 나간단다. 액자로 뭐 만드는 거라고 하는데, 참 재주가 용하다.”     


그런 아재로부터 30년 만에 전화가 온 것이다.      


아재는 전화 건 용건을 밝혔다.


“우성아, 내가 오늘 서울 올라가서 상을 하나 받게 됐는데, 니가 시간되면 와서 축하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주믄 좋겠다. 내가 처음 이거 시작할 때 니가 많이 도와줬다 아이가.”     


무언가가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들어 얼른 인터넷으로 ‘이상수’라는 이름을 검색해 봤다.


하.. .그랬구나.     


아재는 보릿대(麥稈)를 활용한 ‘맥간공예’라는 분야를 만들었고, 많은 문하생을 길러냈으며 이번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올해의 최고예술가상을 받게 된 것이다.     


“내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혼자서 꾸역 꾸역 맥간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 이렇게 단체에서 상을 주는 건 나를 좀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는 거라 우성이 네한테 자랑도 하고 싶고.”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아재의 다양한 활동을 살펴보며 그 동안 아재가 걸어야했던 외롭고도 힘들었던 여정이 떠올라 콧날이 시큰했다. 




결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혈연, 학연 등 배경의 도움 없이 오로지 혼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서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니.     


그 날 나는 행사에 참석해서 오랜만에 아재와 재회했고, 아재의 수상을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맥간 공예는 많은 분들이 배우고 있었으며, 꽤 고가(高價)로 일본에 팔려나가는 등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높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아재는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나를 불렀고, 나는 행사마다 쫓아다니고 있다. 

“진짜 힘들었다. 사람들이 다 미친 짓이라고 했다 아이가. 그치만 나는 확신이 있었거든. 값싼 재료를 사용해서 멋진 작품을 만들 수도 있고, 이걸로 주부들은 돈도 벌 수 있고. 여기 저기서 강의요청이 많아 요새 참 바쁘다.”     




신념을 갖고 흔들림 없이 한 길을 걸어온 아재의 굳건한 모습.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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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아재 인터뷰(1)  http://www.kyeong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995209

상수아재 인터뷰(2) http://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356214

상수아재 인터뷰(3)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1/03/13/201103130020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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