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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6. 2015

애인에게 준 선물, 헤어지면 돌려받을 수 없나요?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친구로부터 걸려 온 전화.

“조 변호사, 바쁜데 미안해, 후배 녀석이 뭔가 법률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내겐 이야기를 안 하네. 아무래도 프라이버시 때문인 것 같아. 상담 한 번 해 줄 수 있을까?”


나를 찾아 온 친구의 후배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트레이너로 활동 중인 권00(30세).


권군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제가 그 친구(최00양, 29세)를 사귄 지는 1년쯤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첫 눈에 반했죠. 변호사님도 남자시니까 그 마음 이해하실 겁니다.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 말이죠.그 친구가 명품 액세서리를 특히 좋아해서 제가 사다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권군은 최양과 사귀는 동안 상당한 양의 명품을 최양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최근 최양이 변심을 했고, 다른 남자를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급기야 열흘 전에 최양은 권군에게 이별을 통보해 왔다.


“좋습니다. 저도 자존심이 있죠. 저 싫다는 여자, 구차하게 잡지 않겠습니다. 쿨하게 보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동안 제가 사줬던 명품은 돌려주거나 아니면 돈으로라도 반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쿨(?)한 권군은 꼼꼼하게 적은 명품 리스트를 내게 보여주었다.


(1) 구찌 핸드백 ... 시가 250만 원

(2) 티파니 반지 ... 시가 150만 원

(3) 프라다 지갑 ... 시가 100만 원

(4) 지미추 구두 ... 시가 150만 원

(5) 마리아 꼬르끼 밍크 머플러 ... 시가 200만 원

“여기서 말하는 시가는 어떻게 산정한 건가요?”

“아, 네. 제가 지불한 가격입니다. 영수증은 여기에 다 있습니다.”


권군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별도 파일에 정리한 영수증 묶음을 보여줬다.


“그래서 제가 몇 일 전에 그 친구에게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이제 헤어지게 됐으니 제가 줬던 명품은 모두 돌려 달라구요. 만약 물건으로 못 돌려 준다면 돈으로라도 반환하라고 했죠. 돈으로 반환할 경우 시가의 70% 정도만 줘도 된다고 했습니다. 어제 그 친구의 답변이 왔는데요, 세상에, 하나도 못 돌려 주겠다는 겁니다. 완전히 제가 바보 된 기분이라 참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법적인 조치를 모두 다 취하고 싶습니다. 변호사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상담 내용은 상당히 코믹한데, 의뢰인의 태도는 너무 절박해서 표정관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로서도 이런 종류의 법률 상담은 처음이라 관련 법조문을 뒤적여봤다.


일단 연애기간 중에 권군이 최양에게 선물을 한 것은 법적으로 평가하자면 ‘증여’라고 할 수 있다. 증여는 한쪽 당사자가 아무 대가없이 무언가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상대방이 ‘동의’하면 성립하는 법률관계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증여했던 물건을 돌려받고 싶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미 성립했던 증여를 ‘해제’하거나 ‘취소’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민법 조문을 다 뒤져봐도 ‘이미 건너 간 선물’에 대해서 이를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없었다.


굳이 관련된 조문을 찾는다면 민법 제561조의 ‘부담부 증여’였다. 즉, 증여를 할 때 증여를 받는 사람도 일정한 부담을 지기로 약속했다면 증여를 받은 사람이 나중에 그 약속된 부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증여자는 증여를 해제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 가능했다.


이를 권군의 사례에 대입시켜 보면, 권군이 최양에게 선물을 할 때 ‘앞으로 나랑 사귀는 것을 전제로 이 선물을 주는 거야’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했고, 최양도 ‘알았어. 오빠. 내 마음은 변치 않을거야.’라고 약속한 뒤 이 선물을 받은 것이라면, 최양은 ‘권군과 계속 사귈 것이라는 부담을 지고’ 위 선물들을 증여받은 것이다.


그런데 최양이 일방적으로 권군에게 귀책사유가 없음에도(권군의 주장을 사실로 보고)권군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이라면, 이는 증여에 따른 부담을 최양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권군은 증여를 해제할 수 있고, 그 해제의 효과로서 명품을 반환받을 수가 있다.


그런데 연인끼리 선물을 주면서 ‘이 선물은 계속 나랑 사귀는 것을 전제로 주는 거야.나중에 나랑 헤어지면 돌려줘야 해. 알았지?’라고 말하는 남자가 누가 있겠는가.


여하튼 연인끼리의 선물은 민법 제561조의 부담부 증여에 해당되기는 힘들 것이므로, 결국 일단 선물이 건너가면 이를 돌려받기란 법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권군에게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제가 이 명품들을 모두 할부로 구입했거든요. 월급쟁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할부 끝나지 않았는데 앞으로 계속 카드명세서를 보면 울화통이 터질 것 같습니다.제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단 말씀입니까? 정말 억울합니다.”


나는 억울해 하는 권군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달래고는 좋은 여자 만날 거라는 덕담을 하고 돌려 보냈다.

관련해서 한 가지 법률 상식을 더 살펴보자.


민법 제555조에는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각 당사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증여의 의사표시를 ‘서면’으로 약속한 경우에는 이를 일방적으로 해제할 수 없으며 상대방이 법적으로 청구하면 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진 박군이 애인인 허양에게 호기롭게 이렇게 큰소리친다. 


“자기야, 내가 말야 올 연말에 아마 보너스 받을 거 같은데, 그 때 샤넬 백 하나 사줄께.” 


그러면 허양은 “어머, 오빠. 진짜 멋지다.”라고 말하고는 얼른 메모장을 꺼내서 “오빠가 방금 약속한 거 이 메모장에 써주면 나는 이미 샤넬 백을 받은 기분일 거 같아. 호호호. 하나 써줘.”라고 요청을 하시라.


“그래? 그거 뭐 어렵겠어. 좋아. 이 오빠가 멋지게 써주지. 나 박00은 올 연말에 허00 공주에게 샤넬 백을 사준다. 그리고 멋지게 사인. 됐지?”


박군이 이렇게 서면에 자신의 증여 의사를 표현했다면, 만약 연말이 됐을 때 둘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하더라도 허양은 박군에게 샤넬 백을 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결론이 된다.  



남성들이여,


일단 사랑에 빠지더라도 너무 무리해서 선물을 갖다 바치지 말 것이며, 뭔가 약속을 하더라도 허공에 흩어질 말로 할 것이지 서면에다 쓰지는 마시길.


여성들이여,


남성들이 시키지도 않는데 뭘 사주겠다고 큰 소리치면 무조건 메모장에 그 약속을 기재하도록 유도하시길.


-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 중에서 - 



조우성 변호사의 세바시 강의 영상


https://youtu.be/Fp0gPXr_v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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