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어쩌다가 이런 일을 또 저질렀습니까?”
절도 전과 4범인 장00씨(당시 45세).
“제가 정말 손을 씻으려고 했는데... 어머님이 갑자기 암 선고를 받으셔서”
“네? 암 선고요?”
“네. 위암 말기 판정을...”
1993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연수를 받던 나에게 부여된 국선변호사건.
빈 집 문을 따고 들어가 집안의 귀중품을 훔치려다 발각된 장00씨. 그는 전과가 있어 구속이 되었고, 나는 그의 변호를 맡게 되었다.
00구치소에서 접견을 하면서 그에게 들은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 같았다.
그의 죄는 나빴지만 그가 처한 사정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변호사님, 저 만약 이번에 실형(實刑) 선고를 받게 되면 어머니 간호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변호사님. 어떻게든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힘 써 주세요.”
어차피 무죄를 주장할 수는 없었기에 장씨가 처한 상황을 최대한 부각시켜 판사님이 정상(情狀)을 참작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자료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국선변호 사건치고는 이례적으로 5번이나 구치소에 가서 심층(?) 접견을 하면서 장씨의 딱한 사정을 정리했다.
대략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어떻게 한 사람에게 이런 여러 종류의 고난이 겹쳐서 올 수 있는지 마음이 아팠다.
나는 장씨의 설명을 토대로 ‘변론요지서’에 자세히 그 상황을 적었다. 그리고 법정에서 변론을 할 때도 이 부분을 최대한 부각했다. 특히 변호사로서 최종변론을 할 때, 판사님이 눈치를 주었지만 10분간이나 장씨의 사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약자들을 어떻게든 보살펴야 한다’는 메시지를 비분강개조로 전달했다.
드디어 선고일.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판결을 기다렸다. 판사님은 사건 번호를 호명하더니 피고인에게 말씀하셨다.
“피고인! 피고인은 전과도 많고 이번 사건의 죄질(罪質)도 안 좋습니다. 하지만 국선변호인의 변론과정을 살펴보니 피고인의 사정이 참으로 딱한 것 같아 이번에 집행유예를 선고합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저지르지 마시고 성실히 사세요. 국선변호인께 고맙다고 하세요. 피고인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되 그 형의 집행을 2년간 유예한다.”
와우! 진심이 통했다.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으므로 바로 석방이 가능하다.
장씨는 나를 돌아다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00구치소에 전화를 걸어 장씨의 석방 시간을 물어봤다. 그 날 저녁, 나는 굳이 장씨가 원하지도 않는데 00구치소를 방문했다. 장씨가 구치소에서 석방되는 그 광경을 직접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00구치소를 방문했을 때 이미 장씨는 석방 절차를 밟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는 장씨.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손을 뻗으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좀 있다 접견실로 들어온 웬 중년의 부인.
“상구 아버지, 고생많았어요.”
나는 장씨에게 “혹시 가출했던 부인이 돌아오신 겁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장씨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죄송합니다. 집사람은 저랑 살고 있습니다. 가출 안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러고 보니 장씨가 더 이상 절룩거리지도 않았다.
“그 다리는...?”
“그 때 구속된 후 구치소에서 좀 삐끗했는데, 이젠 괜찮아졌어요.”
이런 뻔뻔한 인간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장애가 있다고 하더니...
도대체 어디까지가 거짓이란 말인가.
“그럼 어머님 위암 선고는?”
“죄송합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지 꽤 됩니다.”
나는 멍하게 초점 잃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쿨하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부인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나가는 장씨.
나는 한참이나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스토리텔링의 승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