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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10. 2015

죄가 익기 전에는 꿀같이 여기다가...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변호사님. 저, 기억 못하시겠습니까? 김○○ 지점장입니다. 예전에 P랑 같이 술집에서 뵀던.”


휴대폰 너머에서 다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시 눈만 껌뻑거리다가, 불현듯 6개월 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P는 10여 년 전 소송과정에서 알게 된 사이인데, 나랑 나이가 같다보니 그 때부터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6개월 전 어느 날 밤, P는 술 한 잔 하자며 나를 불러냈다.


“나 지금 바빠. 내일 재판도 두 건이나 되고......” 

“어이, 조 변호사, 내가 좋은 사람들 소개시켜 줄 테니까 빨랑 와. 그리고 맨날 재판만 해가지고는 뭐 큰 돈이라도 되냐?”


나는 P의 요청에 못 이겨 30분 후 서울 강남 논현동에 있는 어느 술집으로 달려갔다. 휘황찬란한 인테리어로 치장된 Room 안에는 P를 비롯한 여러 명이 접대하는 아가씨들과 뒤섞여 있었다.


당시 P는 몇 건의 M&A를 성공시킨 직후라, 코스닥 업계에서 소위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고 있었다. 뭔가를 축하하러 모인 자리 같았다. P를 통해 소개를 받고 여러 명과 명함을 나눴는데, 거기서 소개 받은 분이 바로 ○○은행 김 지점장이었다. 선하게 생기신 분이었는데 P는 그를 나에게 자신의 프로젝트에서 자금 담당을 맡고 계신 분이라 소개했다.


술이 몇 잔 더 돌아가자 P는 접대하는 아가씨들을 다 나가라고 한 다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3달 보고 있습니다. 3달 이내에 딱 2배로 띄울 겁니다. 주포(主砲 : 주로 자금을 조달하는 세력이란 뜻으로 M&A 업계에서의 은어)는 김 지점장님 쪽에서 맡아 주기로 했으니 각자 역할분담만 잘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는 내게 살짝 귓속말로 전했다.    

“조 변호사, A실업 주식 좀 사놔. 내가 말은 2배라고 하지만 3배 이상은 띄울 거니까. 이런 기회 놓치면 너무 아쉽지 않겠어?”    

그 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P와 함께 A실업의 주가를 띄워서 그 차익을 실현하는 목적으로 모였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팀들은 벌써 이와 유사한 거래 2건 정도를 성사시켜서 꽤나 많은 돈을 챙긴 상황이었다.


인위적으로 주가를 띄우는 것은 ‘시세조종’이라 해서 자본시장법에 따라 형사처벌까지 될 수 있는 행위인데, 그런 이야기를 버젓이 하고 있는 P나, 그 자리에서 이에 동조하는 다른 이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어이없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그 일을 잊고 지내왔는데, 오늘에야 갑자기 김○○ 지점장이 전화를 한 것이다.


그 다급한 목소리에 뭔가 일이 터졌구나 라는 사실을 직감하면서, 컴퓨터로는 인터넷을 통해 A실업의 주가 그래프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연인 즉 이랬다.


그 날 이후로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서로 역할을 분담해서 A실업 주가를 띄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고가매수주문, 통정매수주문)으로 소위 ‘작전’을 펼쳤다. 이처럼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우기 위해서는 자금(소위 ‘실탄’)이 필요했기에, 200억 원 이상을 명동 사채시장에서 빌렸다. 이렇게 자금을 빌리는 과정에서 김 지점장과 몇 명의 관련자들은 연대보증을 섰다고 한다. 


2달 만에 A실업의 주가는 2배 정도 상승했는데, 그 이후 멤버들 간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한 팀은 주가를 좀 더 올린 다음에 빠져나가자는 입장이었고, 다른 한 팀은 더 이상 가다가는 금융당국에 꼬리가 잡힐 테니 이쯤에서 그만두자는 입장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지휘자였던 P는 좀 더 주가를 올리자는 쪽이었는데, 결국 이에 반대하던 팀은 작전을 중단하고 자신만 차익을 보고 나오는 바람에 주가는 몇 번의 하한가를 기록한 후 예전(처음 작전을 시작할 당시)보다 절반 가격으로 떨어져 있었다.

주가가 이상하게 급등한 것에 의문을 품은 금융감독원은 대량 주문을 정기적으로 내고 있던 주식 계좌를 추적했다. 김 지점장은 추적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부인과 처제 명의의 주식계좌를 사용했는데, 금융당국은 이 부분까지 모두 추적한 다음 김 지점장과의 관계를 알아 내고는 김 지점장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밝히라는 명령서를 보낸 상황이었다. 


이렇듯 금융당국으로부터의 수사가 좁혀 오는 것에 더하여, 김 지점장이 연대보증을 섰던 200억 원을 갚지 못하자 명동 사채업자는 당장 200억 원과 이자를 내 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사실 P를 만나 두 건의 시세조종을 통해 3억 원 정도 벌었습니다. 월급쟁이 입장에서 몇 달 만에 3억 원을 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눈이 뒤집힐 만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결국 김 지점장은 금융당국의 조사과정에서 혐의가 입증되어 검찰에 고발되었고,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김 지점장을 기소했는바, 재판을 통해 3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아울러 명동 사채업자들은 김 지점장이 갚지 못한 200억 원을 문제 삼아 김 지점장에게 민사소송(대여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해서 승소한 다음 김 지점장의 집에 대해 경매처분을 했고, 퇴직금에 대해서도 전부명령 등을 통해 일체를 모두 찾아가버렸다.


김 지점장의 가족은 졸지에 가장도 잃어버리고 집도 날려버린 신세가 된 것이다.


김 지점장으로서는 두 건의 시세조종을 통해 3억 원 정도의 이익을 취한 것이 결국 화근이었다. 아마 그 두 건의 성공이 없었다면 이번 A실업 시세조종에는 가담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 두 건의 성공으로 인해 자신감이 생겼고, 이번에는 자신이 작전 자금을 끌어오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여 200억 원 차용금에 대한 연대보증까지 선 것이다.


過罪未熟 과죄미숙 愚以怡淡 우이이담 至其熟時 지기숙시 自受大罪 자수대죄


죄를 지어도 죄의 업이 익기 전에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꿀 같이 여기다가

죄가 한창 무르익은 후에야 비로소 큰 재앙을 받는다.


법구경에 나오는 구절인데, ‘과죄미숙’이란 말에 눈이 간다. 


죄를 지어도(過罪), 그 죄가 충분히 숙성하지 않은 상태(未熟)에서는 외부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달콤하게 여긴다는 부분정말 진리이다.


‘죄’는 그것을 저지른 당장에는 아픔보다는 ‘쾌감’과 ‘기쁨’이 크지만, 죄의 씨앗을 뿌려 놓으면, 그 죄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싹을 틔우고 길이생장을 한 후 꽃을 피우고 드디어 독의 열매(毒果)를 맺는 법이다. 


나도 30대에는 주위 지인들 중에 일거에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배가 아프거나 속이 쓰렸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들어서였을까?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소식을 들으면 두가지 생각이 든다.   


“과연 그 사람이 저 부(富)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을까? 그만한 대가를 치렀으리라.

또한 과연 저 사람의 저 부(富)가 궁극적으로 그에게 도움이 될까? 아니면 또 다른 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이런 식의 논평을 하면 주위에서는 “도사 다 되셨구먼”이라고 말한다.


“분수에 없는 복과 무고한 횡재는 만물의 조화 앞에 놓인 표적이거나 인간 세상의 함정이다. 높은 곳에서 보지 못하면 그 거짓된 술수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명예와 부귀가 헛되이 사라지는 길을 직접 따라가 그 끝을 지켜보면 탐욕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채근담) 


돈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겠냐마는, 헛된 부(富)가 그 사람을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를 김 지점장의 사례를 통해 보고나니 옳지 않은 수단에 의해 취득되는 재화는 결국 나를 망치게 되는 화근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 중에서 - 


조우성 변호사의 세바시 강의 영상


https://youtu.be/Fp0gPXr_v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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