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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10. 2015

보험금 받으러 왔습니다.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김원철(가명) 사장은 부동산 시행업을 하다가 100억 원 가량의 부도를 내고 구속되었다.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분양이 잘 될 것처럼 사업계획서를 허위로 작성했고, 자신의 지인들이 마치 분양자인 것처럼 서류를 꾸며 자격도 안 되는 사람들을 통해 대출을 받아 그 자금을 함부로 썼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김 사장은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2, 3심에서 1심의 형이 확정되어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박재원(가명) 사장은 코스닥 시장에서 M&A를 진행하다가 인수하려는 기업 내부 자금을 함부로 썼다는 이유로 횡령죄로 구속되었다가 1심에서 3년형을 선고 받은 뒤 2, 3심에서 1심의 형이 확정되어 역시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교도소 같은 호실에 수감된 김 사장과 박 사장. 

나이로 보나 입감된 순서로 보나 김 사장이 선배격이었다. 


구치소는 아직까지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미결수)들이 재판을 받기 위해 수감되는 곳이고, 교도소는 이미 판결이 확정된 피고인(기결수)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징역형의 기간 동안을 보내기 위해 수감되는 곳이다.


따라서 구치소에 수감된 미결수들의 관심사는 과연 형사재판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의 형을 선고받을 것인지, 그리고 재판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사항을 주장하려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에 몰려 있다.


하지만 일단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에 수감된 기결수들은,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해야 빨리 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신경을 쏟으며, 아울러 가석방 등을 통해 최대한 빨리 출소하는 방법을 찾는 데 매진한다.


김 사장은 사회에 있을 때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미팅을 하고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막상 교도소에 수감되고 나니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기회를 교도소 안에서라도 찾아야겠다는 초조한 마음에 사로잡혔을 때 박 사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치고 본인이 억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데, 박 사장 역시 자신은 정말 억울하게 처벌을 받은 것이며, 약간의 자금만 보충되었으면 성공적인 M&A가 성사되었을 것이라고 김 사장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아울러 자신은 지금 교도소에 있지만 파트너들이 현업에서 뛰고 있으며, 아직도 좋은 Deal들이 많이 있으므로 30억 원 정도만 조달할 수 있다면 아주 수익성 높은 M&A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에 김 사장은 몇 번이고 박 사장에게 “그거 확실한 거요?”라고 다짐을 받았다.


죄를 지어 구속된 사람들 중에는 몇 사람의 죄를 같이 떠안고 오는 경우가 많다. 


수사기관의 수사결과 관련자들 중 몇 명이 입건되지 않고 누락되는 수가 있는데, 이 때 입건된 사람들은 굳이 수사기관이 파악하지 못한 공범자들에 대한 범죄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그 사람을 보호해 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죄를 굳이 밝히지 않고 자신이 떠안고 옴으로써 그 사람에게 심적인 부담을 주는 한편, 그 사람에게 무언가 부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둔다는 의미도 있다. 이를 두고 속칭 ‘보험을 든다’라는 표현을 한다.


김 사장 역시 부도 관련으로 구속될 때 문제가 될 만한 사람 몇 명을 보호해 준 바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A 은행의 한 지점장이었다. 


김 사장의 주거래 은행이었던 A 은행으로부터 50억 원 가량의 대출을 받으면서 김 사장은 한 지점장에게 상당한 액수의 리베이트를 제공했었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면 한 지점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줄여서 ‘특경법’) 위반죄로 무겁게 처벌될 수밖에 없다. 당시 수사기관에서는 김 사장의 자금 사용처를 집요하게 파헤치면서 금융권으로 자금이 흘러갔는지 여부를 밝히려 했지만 김 사장은 끝까지 한 지점장에게 제공한 리베이트를 수사기관에 자백하지 않았다. 당시 한 지점장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 사장이 한 지점장의 범죄사실을 밝히지 않은 덕택에 한 지점장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고 직장생활도 계속할 수 있었다. 


박 사장으로부터 30억 원 정도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면 괜찮은 M&A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김 사장은 박 사장에게 넌지시 말했다. 


 “당신 파트너 중 믿을 만한 사람에게 A 은행 한 지점장을 만나 보라고 말해 봐요. 내가 보내더라고 하고. 절대 무시는 못할 거요. 대출을 받을 법인 몇 개를 앞세운 다음 1개 법인 당 5억 원씩 대출받는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될거요. 내가 별도로 편지를 보내 놓을 테니.”


김 사장으로서는 한 지점장의 죄를 수사기관이 밝히지 못하도록 자신이 막아 준 대가를 이제야 받아 내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 사장으로서는 뜻하지도 않게 교도소 안에서 M&A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된 셈이다.


난감해 진 것은 한 지점장이었다.

항상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던 김 사장이 한 지점장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조만간 누가 찾아갈 테니 저라고 생각하고 부탁을 잘 들어 주세요.”

아니나 다를까 몇일 뒤 찾아온 어떤 이는 다짜고짜 30억 원의 대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한 지점장은 진퇴양난이었다. 만약 김 사장의 요청을 거절할 경우에는 김 사장이 리베이트 건을 수사기관에 알릴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게 되면 자신은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 직장생활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김 사장 요구대로 자격도 되지 않는 회사에 30억 원을 대출해 준다면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 경우에도 만만치 않은 여파가 예상되었다. 


한 지점장은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무리를 해서라도 대출을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박 사장이 보내온 파트너들과 함께 서류작업을 한 다음 본점 심사부에 허위 서류를 제출해서 자격도 되지 않는 기업 6개에 5억 원씩 합계 30억 원을 대출해 준 것이다.


그 뒤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일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

  

박 사장의 파트너들은 대출받은 금액을 자기들 편의대로 사용했고, 회사는 폐업시켜버렸다. 결국 대출금액이 전액 회수되지 못하자, A 은행 차원에서 대출 과정에 대해 감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한 지점장의 서류조작이 발각되어 한 지점장은 특정경제범죄처벌에 관한 법률(업무상 배임) 위반죄로 구속 기소되었다. 아울러 A 은행은 한 지점장의 아파트에 대해서도 손해액 30억 원에 대한 담보 차원에서 가압류 조치를 취했으며, 장차 민사판결을 얻어 경매에 들어 갈 예정이다.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는 한 지점장.


“항상 불안 불안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터지는군요. 김 사장과의 악연이 이런 결말을 낳습니다. 전 이제 어떡하면 좋죠?”


한 지점장이 김 사장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리베이트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결과를 예상치 못했으리라.


보험을 들어 둔 사람에게서 보험금을 받아내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도모하는 교도소 안 사람들의 꿈틀거리는 위험한 욕망이 있다.

반대로 ‘내 보험금 돌려줘!’라는 섬뜩한 청구를 받는 악몽 때문에 불면의 밤을 지새는 교도소 밖의 불안한 영혼들이 있다. 이들은 몸은 비록 교도소 밖에 있지만 이미 마음의 교도소에 갇혀 있는 수감자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분수에 없는 복과 무고한 횡재는 만물의 조화 앞에 놓인 표적이거나 인간 세상의 함정이다. 높은 곳에서 보지 못하면 그 거짓된 술수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명예와 부귀가 헛되이 사라지는 길을 직접 따라가 그 끝을 지켜보면 탐욕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채근담의 한 구절이다.


직업적인 이유로 인해, 잘못된 부(富)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반복해서 보는 나로서는, 탐욕스런 마음이 들다가도 그 끝을 예상하고는 스스로를 다잡게 된다. 결코 공짜가 없는 인생살이다.



조우성 변호사의 세바시 강의 영상


https://youtu.be/Fp0gPXr_v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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