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변호사 Oct 13. 2015

한비자 리더십 - 외부 컨설팅을 맹신하지 말라

CEO는 때때로 고민에 빠진다.

과연 우리 회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가? 우리 조직에 문제는 없는가? 다른 회사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CEO가 아무리 뛰어난 역량이 있다 해도 조직의 현재상황과 지향성을 되짚어 점검하고픈 욕구가 있다. 이 때 외부 전문가로부터 컨설팅을 받곤 한다.


전문가들의 컨설팅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컨설팅을 받는 쪽의 몫이다. 하지만 컨설팅에 대한 맹신 혹은 컨설팅을 위한 컨설팅 때문에 조직은 예상치 못한 몸살을 앓는 경우도 있다.     




A 그룹은 계열사 7개를 거느린 중견 그룹이다. 선대 회장께서 기초를 닦았고, 현재는 선대 회장의 장남인 박 사장이 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미국에서 유학한 박 사장은 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한 경험까지 갖추고 선진 경영기법을 경영 일선에 적용하는 CEO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박 사장은 ‘고인 물은 썩는다’는 지론을 강조하면서 내부 역량만으로는 발전의 한계가 있으니 정기적인 외부 컨설팅을 통해 조직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방안을 찾는 데 주력한다. 거액의 컨설팅 수수료를 기꺼이 부담하는 A 그룹은, 외부 컨설팅 업체들 사이에서는 훌륭한 의뢰인으로 소문이 나 있다.      


A 그룹에서만 20년 정도 근무한 김 이사는 사석에서 박 사장의 이러한 ‘컨설팅 애호’에 대해 내게 조심스런 의견을 밝혔다.     


“외부 전문가가 바깥에서 우리 회사를 바라본다면 회사의 문제점을 보다 더 정확하게 진단할 수도 있겠지요. 인정합니다. 하지만 젊은 컨설턴트들이 두세달 가량 회사에 와서 이것 저것 살펴본 뒤 해결책이라고 던져주고 가는 2~300 페이지짜리 보고서가 회사의 현실과 맞지 않거나 너무 이상적인 내용이 많아 난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컨설턴트들은 박 사장의 스타일을 잘 알기에, 보고서에 미국의 다양한 최신 경영이론과 모델을 포함시키고, 그 모델을 A 그룹에 적용할 것을 권고한다고 한다. 새로운 것에 관심 많은 박 사장은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조직을 바꾸고 새로운 정책을 펴는 일이 많았다. 


자신들의 컨설팅 결과에 따라 회사의 중요 정책이 바뀐다는 것을 눈치 챈 컨설턴트들은 회사 임원들에게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노골적인 제안을 한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주면 회사에 계신 분들도 별 충격 없이 잘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 설명해 주세요. 그럼 그 내용을 충실히 반영해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실행해야 할 분들은 여러분들이니 저희들이 잘 맞춰드릴게요.”     


회사 임원들은 차라리 컨설턴트들이 이렇게 말해 주는 것이 고맙다고 한다. 박 사장에게 똑같은 의견을 전달해도 컨설턴트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 박 사장이 훨씬 신빙성 있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컨설팅을 받기로 한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컨설팅 결과가 그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항상 냉정하게 평가하라.     


외부전문가들이 조직 바깥에서 조직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최신 경영이론을 접목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경영컨설팅은 조직의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경영컨설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경영 현장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분명 있다. 특히 조직이 외부컨설팅 결과에 쉽게 휘둘리고, 나아가 리더가 조직 내부 목소리보다는 외부 컨설팅 결과를 맹신할 경우, 조직원들이 방향성을 잃고 힘들어 할 수 있다.     


한비자는 흙밥과 진흙국의 비유를 통해 ‘보기에만 좋은 것’과 ‘실제 먹을 수 있는 것’은 아이들도 구별한다면서 겉보기와 실질을 잘 따져야 한다고 했다.      


"무릇 어린아이가 서로 장난치며 놀 적에 흙은 밥이라 하고 진흙을 국이라 하며 나무를 고기라 한다. 그러나 저녁 때가 되면 반드시 집에 돌아가서 밥을 먹는 이유는 흙밥과 진흙국을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외저설 -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먹을 수는 없다’.
이 문장에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아울러 한비자는 군주가 정책을 결정하고 진행할 때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실질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송나라 왕이 제나라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을 무렵, 전승 기념의 무공전을 세웠다. 왕은 일 하는 백성들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노래 잘하는 사람인 계(癸)를 불렀다. 계(癸)가 선창을 하고 노래를 하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춰 서서 바라보고 건축 일을 하는 사람들은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계를 불러 상을 내리자 계가 말했다.     


"제 스승 사계(射稽)의 노래가 저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그래서 왕은 사계를 불러 노래를 부르게 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건축 일을 하는 사람은 피로를 느꼈다. 그러자 왕은 계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사계가 노래를 부를 때는 지나가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도 피로를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노래는 너만 못한 것 아니냐? 어찌된 까닭이냐?"     


그러자 계는 이렇게 대답했다.


"왕이시여, 공사의 결과를 보십시오. 제가 노래를 불렀을 때에는 4판(1판은 높이가 두자임) 분이었지만 사계가 노래할 때에는 8판 분을 해치웠습니다. 또한 흙의 단단함을 확인하기 위해 막대기로 찔러 보십시오. 제가 불렀을 때는 다섯치나 들어갈 정도로 무르지만 사계가 불렀을 때는 단 두치만 들어갈 뿐입니다."     




왕이 계나 그의 스승인 사계에게 노래를 부르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이를 즐기려함이 아니라, 백성들의 기운을 북돋워 공사를 잘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나. 계는 현란한 노래솜씨로 백성들의 작업을 혼란스럽게 했지만, 그의 스승인 사계는 진정으로 백성들의 힘을 북돋워 준 것이다. 과연 누구의 노래가 더 훌륭하다고 할 것인가.


한비자는 이 예화를 통해 군주는 ‘목적’에 부합되는 실적을 살펴봐야지 ‘표면’만 아름다운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6세기 일본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는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적장 요시모토를 격파하고 그가 쓰던 칼을 전리품으로 획득했다. 요시모토가 쓰던 칼은 당시 천하에 이름난 명검이었다. 요시모토의 칼을 감회 깊게 살펴보던 노부나가는 부관을 불러 '이 칼을 4치 5푼 끊어내고 다시 갈아오라'고 명했다.


주위 사람들은 '명검을 그렇게 하면 망가집니다.'라면서 만류하자, 노부나가는 이렇게 말했다. 


"칼의 목표는 칼을 휘두르는 주인의 목숨을 지켜주는 데 있다. 칼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주인의 체력을 소모시켜 주인이 목숨을 잃게 되면 이는 명검이 아니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칼(도구)의 쓰임새에 집중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중심이며 칼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명검’이라는 명성에 휘둘려서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칼을 휘두르다가는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노부나가는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컨설팅을 받는 목적은 무엇인가? 컨설팅을 통해 조직을 더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있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현실감이 결여되었는데도, 외부 전문가들이 수행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결과가 과대평가되고 그 결과의 반영이 강제된다면 어떻게 될까?


어설픈 컨설팅 결과를 조직에 강제하는 것은, 마치 흙밥과 진흙국을 실제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 그 흙밥과 진흙국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조직원이지 리더가 아니기에, 리더는 편하게 권할 수 있으나 조직원들은 결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CEO는 컨설팅 결과가 자신의 회사에 맞는 것인지, 그리고 컨설팅을 위한 컨설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외부 컨설팅 이전에 내부적으로 문제점의 진단 및 해결책 도출에 관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세심하게 살펴볼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