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에서 과장으로 재직 중인 성지원씨(여, 가명, 33세). 차를 몰고 외근 나갔다가 골목길에서 자전거와 충돌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얘! 괜찮니?”
아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릎을 털고는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요”
불안한 지원씨.
“괜찮니? 진짜 어디 아픈 데 없어?”
“괜찮아요. 아줌마. 저 지금 친구들하고 농구하러 가야돼요.”
지원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명함 두 장을 그 아이 손에 쥐어줬다.
“그래도 모르니까 혹시라도 몸에 이상 있으면 아줌마에게 연락줘야 해. 알았지?”
지원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차에 올라탔다.
그 날 오후 지원씨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아이가 전치 3주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당신은 뺑소니 죄를 저지른 겁니다. 특정범죄가중처벌에관한 법률 제5조의 3에 따르면 당신은 최소 징역 1년 최고 징역 5년까지 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원씨는 깜짝 놀랐다.
‘내가 뺑소니라고?’
1시간 뒤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그 아이의 삼촌이란다. 아이가 저녁에 집에 왔는데 아프다고 해서 자초지종을 물어본 뒤 지원씨 명함을 건네받았다는 것.
“주위에 물어보세요. 교통사고낸 뒤 명함만 던져 주고 간 경우에도 뺑소니로 된다구요.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고, 그리 되면 직장에서도 당연 면직되는 거 알죠?”
지원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원하시는 게 뭐죠?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 녀석이 앞으로 축구선수되려고 준비 중인데 이번 사고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내가 형님, 그러니까 애 아버지랑 얘기 해봤는데, 3,000만 원 정도 주시면 원만히 합의될 것 같아요.”
“네? 3,000만 원요?”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이상이 지원씨가 내게 털어놓은 사건의 전모였다.
“변호사님, 이 일이 회사에 알려지면 전 잘릴 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접근방식에서 왠지 범죄의 기운이 느껴졌다.
“지원씨, 이 남자와 제가 직접 통화해보겠습니다.”
나는 지원씨로부터 전화번호를 건네 받아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00씨 되시죠? 안녕하세요. 전 성지원씨 사촌오빠 되는 조우성 변호사라고 합니다. 조카일은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조카분이 전치 3주라고 하던데 구체적인 진단명이 골절인가요 아니면 염좌인가요?”
“아... 그건... 진단서를 다시 봐야... 됩니다. 분명 3주 맞아요.”
역시나 예상대로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가능하면 그 아이 아버지와 직접 통화하고 싶습니다. 그 아이가 미성년자이니 친권자인 아버지에게 법정대리권이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상대는 아무 답이 없었다. 나는 좀 더 세게 나갔다.
“한 시간 이내로 그 아이 진단서 사진 찍어서 보내세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협박, 공갈죄로 고소할 수 있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30분 뒤, 그 남자는 지원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서로 재수 없는 일에 휘말렸다고 생각하고 없던 일로 하자면서.
“변호사님, 정말 신기하게 그 남자가 꼬리를 내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피해자 가족이라면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는 않죠. 전화한 그 남자는 그 아이 삼촌이 아닐 겁니다. 현장에서 우연히 사고를 목격하고 그 아이로부터 명함을 확보한 제3자일 확률이 커요. 지원씨가 아마 변호사를 찾지 않았으면 3,000만 원,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1,000만원은 뜯어 낼 수 있었겠죠.”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법 지식'을 악용하면 상대방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줄 수 있는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실감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