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협상 Must Know
1997년부터 소송 전문 변호사로 업무를 수행하면서, 내가 담당하는 대부분의 일이 ‘협상 과정’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체계적으로 협상을 배운 적은 없지만 법정에서의 치열한 공방,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한 다양한 논리개발 과정 자체가 생생한 협상 과정이었기에, ‘도대체 협상은 어떤 논리에 의해 진행되는지’에 대한 의문과 관심이 생겼다.
2005년 경부터 ‘협상’, ‘설득’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책들을 모두 구입해서 읽어나갔다..
전공이 법학이고 소송전문 변호사로 살아가다 보니, 내게는 무엇이든 체계를 세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직업병(?)이 있다. 협상력 부분 역시 이를 강화할 수 있는 몇 개의 인자(因子)를 추출할 수만 있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협상력에 관한 비밀을 풀 수 있지 않겠느냐는 열망에 휩싸였었다.
내가 처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협상 다양한 기법(Skill)들이었다. 미국 학자들의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요구하라는 Aim-High, 일단 상대방의 요구조건에 대해서는 거절부터 하고 시작하라는 Say-No, 그 동안의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야박하게 대하기 힘들 경우에는 같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역할을 분담해서 착한 역할과 나쁜 역할을 구분짓는 Good Guy, Bad Guy 등.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이러한 협상 기법들을 보고 나니, 마치 삼국지의 관운장이 청룡도를 얻은 듯했다. 그 누구를 상대해도 이 기법을 활용하면 내가 원하는 협상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영화가 ‘람보 2’다. 그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미군 지휘부는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뒤 은둔생활을 하는 존 람보를 다시 작전에 투입시키려 한다. 베트남에 생존해 있는 미군포로가 첩보 위성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독특한 기후와 지형을 갖춘 베트남 정글지역에 보낼 만한 적임자로는 그 곳에서 오랫동안 전투를 했고, 포로생활까지 했던 존 람보뿐이었다.
람보는 내키지 않았지만 옛 상사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그 임무를 수행하기로 한다. 미군 지휘부는 람보에게 말한다. ‘그 동안 무기가 아주 많이 발전했다. 말만 하라. 다 조달해 주겠다.’ 하지만 람보는 그 제의를 거절한다. 그리고는 자기가 직접 무기를 제조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큰 활과 화살촉 앞에 폭탄을 장착한 한 특수화살까지 준비한 대목이었다.
람보는 정글지역의 특성을 감안할 때, 소음없이 사용할 수 있으며, 명중했을 때 폭발력이 큰 활과 화살을 ‘필살무기’로 선정한 것이었다.
즉,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내가 싸워야 할 곳이 정글이면 정글에 맞는 무기를, 시가지이면 시가전에 맞는 무기를, 해상이면 해상전에 맞는 무기를 준비해야 한다. 전사인 람보는 이를 체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람보는 그 무기를 자기 체형에 맞춰서 만들었던 것이다.
내가 탐닉했던 협상의 다양한 Skill들은 다양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전투를 하러 나갈 때는 그 전장(戰場)에 맞는 무기를 들고 나가야만 한다. 즉, 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싸워야 할 장소와 대상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그 무기는 내 체형에 맞아야 한다. 따라서 내 체형이 어떤지도 스스로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
이를 협상에 빗대어 설명해 본다면, 내가 협상할 대상이 누군가, 그리고 그 사람은 어떤 성향이고 어떤 관심사를 갖고 있으며, 그의 욕구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협상을 진행해야 할 ‘나’는 어떤 상황이며,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결국 Skill보다 더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나와 상대방의 상대방의 욕구, 관심사(Interest)인 것이다.
생각을 좀 더 발전시켜 보았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정말 현란한 화술을 구사하고(Skill이 뛰어남), 어쩌면 그리도 내 속마음을 잘 아는지 놀랄 지경이다(Interest 파악도 우수).
이런 사람이 나를 설득할 때 나는 금방 설득이 될까? 설득이 될 수도 있겠지만 ‘뭐지? 이 사람의 정체는?’이라면서 경계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사람을 잘 모르고, 따라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신뢰하는 누군가가 내게 설득을 하면서 동의를 구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표현법이 세련되지 못하고(Skill의 부족), 내 속마음을 예민하게 파악하지 못한다(Interest 파악 부족).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믿고 그 의견에 동의한다. 심지어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을 위해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충분한 Skill과 상대방에 대한 Interest 파악, 이 두 가지 인자(因子)만 충족되면 협상을 잘 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본질적인 부분이 빠져 있음을 느낀 것이다.
그 본질적인 부분은 바로 ‘협상, 설득을 하는 주체(話者)의 신뢰감, 호감도’였다. 이 인자(因子)는 앞선 Skill, Interest보다 훨씬 중요한 인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인자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선의’, ‘배려’, ‘사심없는 마음’을 의미하는 ‘Good-Will'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냈다.
결국 사람 자체를 신뢰도 있게 만들어 주는 그 속성, 이를 G(Good-Will)이라 부르기로 정했고, 세 인자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를 반영하기 위해 G에는 ‘제곱’을 붙이기로 했다.
그 결과 탄생한 나만의 협상력 증강공식이 아래와 같다.
‘현란한 Skill에 대한 수집’부터 시작된 협상 공부가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지나 결국 ‘나 스스로가 얼마나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도 있는 사람으로 비쳐지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되는 여정 속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협상론은 단순히 테크닉만을 공부하는 학문이 아니라 자신을 갈고 닦아야만 가능한 또 다른모습의 자기계발이라는 사실은 내게 큰 울림으로 돌아왔다.
이제 준비운동은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세 인자인 I, S, G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는 흥미로운 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