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협상 Must Know
가. 입장과 욕구의 차이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의 입장(요구)와 욕구를 구분할 수 있으면, 성공적인 협상을 위한 7부 능선을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상 상대방의 입장과 욕구를 구분하라는 것은 하버드 협상론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입장(Position)은 ‘명시적인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상대방의 욕구(Interest)는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상대방 내면에 있는 욕구, 희망사항’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과 욕구를 구분한 다음, 상대방의 ‘입장’에만 주목하지 말고 상대방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나. 사례 1 : 편의점에서 콜라를 찾는 손님
여러분이 편의점 주인이라고 가정하자. 갑자기 땀을 흘리는 손님이 들어와서 ‘콜라 한 병 주세요’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마침 그 편의점에 콜라가 없었다.
손님은 콜라를 달라는데 콜라 재고가 없다면, 편의점 주인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콜라는 없는데요?’라고 답변할 것인가?
뭔가를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주인은 '콜라 말고 딴 거 드세요’라면서 다른 음료수를 제시할 수도 있다.
이 상황을 ‘입장'과 ’욕구‘라는 협상론의 분석 도구로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손님의 Position, 즉 요구는 “콜라 주세요”이다. 명시적으로 눈에 보이는 손님의 요구사항이다. 그런데 콜라가 없어서 판매를 하지 못하게 되는 편의점 주인은 다급한 마음에 다른 음료수를 권한다. 슈퍼마켓 주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슈퍼마켓 주인은 ‘혹시 손님이 목이 마른 게 아닐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즉, 손님의 요청에 대해 ‘왜 이런 요구(콜라를 달라)를 할까?’, WHY 질문을 했고, 그 과정에서 ‘목이 말라서 콜라를 달라고 한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을 했다.
‘나는 목이 말라요’라는 부분은 상대방의 내면적인 욕구(Interest)다.
만약 편의점 주인이 손님의 요구사항(콜라 주세요)에만 얽메였다면, 다른 음료수를 권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님의 요구사항(콜라 주세요)을 들으면서 손님의 욕구(목이 말라요)를 유추할 수 있었기에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경우 만약 주인이 제시한 다른 대안(17차, 옥수수수염차)을 손님이 선택했다면 그 손님의 Interest는 슈퍼마켓 주인의 예측대로 ‘나는 목이 말라요’인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손님이 ‘콜라가 없단 말이예요?’라면서 슈퍼마켓을 나가 버린다면 그 손님의 interest는 ‘나는 콜라가 먹고 싶어요’였다고 볼 수 있다.
다. 사례 2 : 약국에서 치통약을 찾는 손님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기로 하자.
여러분은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인데, 갑자기 손님이 들어와서는 ‘펜잘 있어요?’라고 묻는다. 그런데 마침 펜잘이 다 팔려서 재고가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약사가 상대방의 요구(Position)에만 집중한다면 ‘펜잘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약사는 손님의 욕구(Interest)에 집중한다. ‘이 손님은 왜 펜잘을 찾을까?’라는 점을 생각해 보는 것이 바로 상대방의 interest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아마도 그 손님은 펜잘의 효능이라고 익히 알려진 두통, 치통, 생리통 중 하나의 고통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약사는 ‘펜잘 없어요’라는 대답 대신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바로 이 질문은 상대방의 욕구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질문을 들은 손님은 “어제밤부터 어금니랑 잇몸 사이가 욱신거리고 쑤시는데 치과에 갈 시간은 없고 해서요”라고 답변한다. 결국 이 손님의 욕구는 ‘펜잘을 먹어야겠다’가 아니라 ‘치통의 아픔을 덜고 싶다’였으며, 이러한 사실은 약사의 현명한 질문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손님이 치통 때문에 고생한다는 것을 파악한 약사는 펜잘 이외에 비슷한 효능을 가진 다른 약(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구입할 수 있는)을 권할 수도 있다.
이에 더하여 권위의 법칙을 활용하여 “참고로 이 약은 서울치과의사 협회에서 공식 인증받은 약인데요...” 라고 말하거나 사회적 증거의 법칙을 활용해서 “치통으로 고생하시는 분들께 이 약을 드리니 다들 만족해 하시더군요”라는 설명을 덧붙인다면 손님이 그 약을 선택할 확률은 좀 더 높아질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내면적인 욕구를 명확하게 상대방에게 이야기해 준다면 굳이 어렵게 협상 공부를 하지 않아도 소통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욕구를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 사례에서도 손님이 만약 ‘제가 지금 목이 말라서 그런데 콜라나 뭐 다른 음료수 없나요?’라고 질문해 주었다면 편의점 주인은 훨씬 쉽게 콜라 대안을 제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손님은 대뜸 ‘콜라 주세요’라고만 하기 때문에, 슈퍼마켓 주인은 그 손님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WHY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욕구’만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면, 그에 맞춰 협상, 설득을 진행함으로써 양자가 만족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요령껏 표현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상대방 욕구파악은 협상 현장에서의 영원한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며,나아가 욕구파악의 달인들은 바로 협상의 달인으로 등극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나는 ‘상대방의 마음 속에’ 한번쯤은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자기계발과 인간관계론으로 유명한 카네기의 책에 보면 이런 예가 나온다.
낚시터에서 낚시를 하던 손님이 낚시터 사장에게 불평을 한다.
“다른 자리에서는 고기가 잘 잡히는데, 왜 유독 이 자리에는 고기가 안 잡히는 거요?”
사장은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그 손님의 장비들을 점검하다가 문득 낚시 바늘에 지렁이가 아닌 초콜렛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이유를 손님에게 물었다.
그러자 손님은
“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초콜렛이요.”라고 자랑스럽게 답한다.
아니, 고기를 낚으려면 고기가 좋아하는 지렁이를 미끼로 써야지 자신이 좋아하는 초콜렛을 미끼로 쓴다고?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렁이 대신 초콜렛을 미끼로 쓴 그 손님의 어리석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다양한 협상을 옆에서 도와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실제 협상 과정에서 의뢰인이 전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반영한 제안을 제시해 놓고는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 쪽하고는 도저히 말이 안 통해요’라면서 화를 내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이는 자신의 낚시 바늘에 지렁이가 아닌 초콜렛을 꽂은 손님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적어도 내 낚시 바늘에 꽂힌 미끼가 지렁이인지 초콜렛인지는 정확히 분간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든 협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 때부터는 좋든 싫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어떤 욕구를 갖고 있을지를 파악해아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나의 interest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상대방의 interest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