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戰國)시대 말기 한(韓)나라 공자(公子)로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韓非 : BC 280?∼BC 233)는 ‘한비자’라는 불후의 명저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상대방에 대한 설득의 요령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세난(說難)’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진술하여 이를 설득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이는 내 지식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내 말하는 기술이 부족해서도 아니며, 내 용기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함에 있어서의 어려움은 설득하려는 상대방의 마음(心意)을 잘 헤아려 내가 말하려는 것을 그에게 맞추기가 어려운 데에 있다.”
“설득하려는 상대가 높은 명예를 구하려는 사람인데 이익을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점으로 설득한다면 비천하다고 여겨서 낮게 대우받고 틀림없이 멀리 내쫓기게 된다.
설득하려는 상대가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높은 명예로 설득한다면 생각이 없고 현실에 어두운 자라고 여겨서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설득하려는 상대가 속으로는 이익을 좇지만 겉으로는 높은 명예를 따라는 척 하는데, 명예가 높아진다는 것으로 유세한다면, 상대는 겉으로는 그를 받아들이지 모르나 마음으로는 항상 멀리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당시 뛰어난 유세가들은 웅대한 뜻을 펼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 나라 군주에게 자신의 구상과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숭고한 뜻을 가진 수많은 유세가들 의견 중에 왕들에게 채택된 의견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들은 배척되고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비자는 안타까운 마음을 세난편에 담은 것이다. 그는 마치 이렇게 외치는 하다.
‘지식이 풍부하고, 말하는 실력도 뛰어나며 나아가 용기까지 있다면 당연히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참으로 순진한 사람이다. 설득을 하려면 내가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알아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그 어떤 설득도 불가능하다.’
한비자는 내가 설득하려는 상대가 추구하는 것이 ‘명예’인지, ‘돈’인지를 명확히 파악한 다음 거기에 코드를 맞춰 설득을 하라고 한다.
아무리 논리로 무장한다 해도, 상대방이 이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그 때부터 그 협상과정은 나와 상대방의 대립구도가 되고 만다. 내가 더 강한 논리를 구사하면 구사할수록 상대방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더 강한 방어를 하게 될 것이다.
마치 이솝우화에서 나그네 외투 벗기기 내기를 한 해와 바람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거센 바람이 몰아칠수록 나그네는 외투를 더 꽉 움켜쥘 뿐이지만. 하지만 따뜻한 햇살이 비치면 자연스레 외투를 벗는 것처럼.
한비자가 세난편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상대방의 Interest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라. 그것이 협상의 첫걸음이다.”라고 강조하는 하버드 협상론과 근본적으로 맥락이 같다.
한비자의 주장이 2,000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하버드 협상론에서 interest란 개념으로 부활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