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두루미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거만해 보이는 두루미에게 말 한 번 제대로 걸 수 없었지요.
여우는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두루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요리로 분위기를 띄운 다음 내 마음을 고백해볼까?
여우는 집에 보관하고 있던 유기농 콩을 발효시켜 향신료를 넣은 ‘여우표 특제 콩스프’를 만들어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막상 두루미를 초대하려니 많이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습니다. 두루미는 선선히 여우의 초대에 응했습니다.
이제 맛있는 콩스프로 두루미를 감동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정성스럽게 숙성시킨 콩으로 콩스프를 완성한 날, 여우는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최고의 요리에 걸맞는 최고의 식기를 준비해야 할텐데.
여우는 집안 대대로 가보로 내려오는 은접시 셋트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아끼느라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그 은접시 셋트.
두루미가 왔습니다.
여우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콩스프를 내놓았습니다. 여우는 두루미가 스프를 맛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습니다.
두루미는 오늘따라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스프를 빤히 노려보기만 했습니다, 여우는 초조해졌습니다.
두루미는 묻는 말에 대답을 않더니 “나, 그냥 갈래!”라면서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여우는 그 후 며칠을 끙끙 앓았습니다.
정말 정성을 다해 준비했는데, 두루미는 왜 그랬을까?
그로부터 며칠 후 두루미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여우는 속으로 ‘야호’하고 외쳤습니다.
더 이상 두루미와 연락할 수 없을까봐 마음 졸였는데,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니.
이번에는 반드시 고백을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여우는 온 산을 뒤지며 수집한 꽃으로 정성스레 만든 목걸이를 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두루미 집을 찾았습니다.
두루미 집을 감싸고 있는 향긋한 냄새가 여우의 마음을 더 달뜨게 했습니다.
여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꽃다발을 두루미에게 건넸습니다.
식탁에 놓인 것은 목이 긴 병 두 개.
“이건 특별히 내가 만든 생선 스프야.”
아.. 두루미는 내 생각을 하며 이 음식을 만들었구나, 밀려드는 행복감...
여우는 긴 병에 든 스프를 그냥 먹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 잠시 두리번거렸습니다.
‘접시를 하나 달라고 해야겠구나.’
바로 그 때 두루미가 싸늘하게 웃으며 여우에게 말했습니다.
여우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 그거였구나. 그 날 두루미 안색이 안 좋았던 이유가. 그 때 내게 말해줄 수도 있었는데. 난, 정말 좋은 접시로 대접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나를 초대한 건 내게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복수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던 거야? 정말 그런거야? 아...’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린 여우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래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는 '상대를 제대로 배려할 줄 모르는 여우'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루미가 통쾌하게 복수를 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이 글에서, 여우를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는 철부지가 아니라 오히려 더 잘하려고 하다가 실수를 한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여우는 좋은 식기로 두루미를 대접하고 싶었는데, 두루미의 입모양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지요.
우리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뭔가를 놓치는 경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비난받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아쉬운 것은 두루미의 반응이었지요. 첫번째 식사 자리에서 '내가 이 식기로 먹기가 좀 불편해서 그런데 다른 그릇 없을까?'리고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루미는 그런 소통을 하지 않고 오히려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복수를 한 거죠.
대부분의 갈등과 분쟁이 어쩌면 '소통의 부재'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이 글을 통해 제시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