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협상력 증강공식 - Interest
고문기업인 00공제회 김 차장이 법률자문을 요청해왔는데, 자문 내용이 좀 특이했다, 공제회로부터 사업자금 500억 원을 빌려간 A사가 조기에 이를 갚겠다는 공문이 왔고, 김 차장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의 답변 공문을 작성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빌려간 돈을 미리 갚겠다는데, 왜 그걸 마다할까?’
요기소 공제회의 전반적인 사업구도를 잠깐 살펴보자.
공제회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 초기 자금을 빌려주고 나중에 사업이 종료되었을 때 이익금을 받는다. 위험성이 큰 초기 단계에 자금을 빌려주기 때문에 금리는 제1금융권 대출금리보다 많이 높다. 따라서 자금을 빌려간 업체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화되면 조기상환 수수료를 물더라도 공제회의 대출금을 갚으려 한다.
공제회는 2008년에 A사에게 초기 사업자금 500억 원을 빌려줬다. 그런데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A사는 공제회에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해왔다.
"우리가 빌려 간 500억 원과 지금까지의 이자, 조기상환 수수료까지 포함해서 갚을께요.“
A사는 공제회의 대출금리(12%)보다 훨씬 싼 6%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은행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공제회 김 차장은 이러한 A사 제안을 덥썩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당초 A사는 ‘3년간’ 돈을 빌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중간에 갚아 버리면 예정되어 있던 ‘3년 간의 이자’를 받지 못하게 되는 손실(엄밀히 말하면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는 논리다.
A사는 계속해서 빌린 돈을 갚겠다고 하고, 공제회는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라, 내가 어느 정도 중재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니, 빌린 돈을 이자까지 쳐서 갚겠다는데, 왜 이럴까? 만약 A사가 사업을 진행하다가 망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국내 부동산 경기 전망은 썩 좋지 않았다.
나는 김 차장과 회의를 해서, 실무자의 정확한 속마음을 알아보려했다. 막상 회의를 해보니 실마리가 잡혔다.
공제회는 상급기관인 정부부처와 감사원의 감사대상이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감사를 받을 때 "아니, 왜 A사로부터 이렇게 조기상환을 받은 거요? 계속 쓰게 하면 이자를 더 받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요. 당신 업무를 제대로 하긴 한 거요? 공제회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못 얻게 했으니 배임 아니요?"라는 질책을 받게 될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김 차장도 A사가 진행하는 사업에 다소 불안한 측면이 있어 지금이라도 조기상환받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감사에서 지적될까봐 A사의 주장을 거부하는 것이 속편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 협상론적으로 설명해 보자면,
외부적으로 드러난 공제회의 입장(position)은 ‘A사의 조기상환을 받아들일 수 없다.’인데, 외부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공제회 담당자의 욕구(interest)는 ‘A사의 조기상환을 받아들이고는 싶지만, 나중에 감사받을 때 지적될까봐 두렵다.’인 것이다.
공제회가 A사로부터 조기상환을 받더라도, 감사 때 지적되지 않을 요건을 만들어 주는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 해결책은 바로 조기상환을 정당화시키는 변호사 의견서를 작성해 주는 것이다.
내가 작성한 의견서의 주요 내용은 이러했다.
"① A사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는 드러난,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Risk가 여러 가지 있다.
② 지금 공제회가 조기 상환을 받으면서 A사의 사업에서 탈출한 후 , 다른 사업에 이 재원을 투자하는 것이 Risk-hedging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③ 만약 지금과 같은 적절한 탈출 시점을 놓친 후, A사의 사업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면 적절한 탈출 상황을 놓친 담당자 및 임원들에게는 책임이 따를 수 있다.
④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현 상황에서는 A사의 조기상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공제회에 득이라고 판단한다."
공제회는 내가 작성한 의견서를 근거로 A사로부터 대출 원금 및 이자까지 받은 후 사업에서 손을 땠다. 추후 감사원의 감사가 있을 때에도 내가 작성해 준 의견서로 사업에서 철수한 것이 충분히 설명되었다.
그 후 A사가 진행하는 사업은, 급격한 부동산 경기하락 및 A사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렸으며, 공제회에 이어 A사에게 대출을 해 준 모 은행은 부실채권 때문에 속앓이를 해야했다. 공제회로서는 가슴을 쓸어 내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