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그 비밀을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론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책 <수사학 ; The art of Rhetoric>에서 거론한 3요소,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에 주목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피스트’들이 각종 분쟁에 개입해서 의뢰인을 위해 변론을 해 주며 많은 수입과 존경을 받았다.
소피스트들이 아고라(Agora) 광장에서 배심원들을 앞에 놓고 의뢰인을 위해 변론을 펼치면 배심원들은 더 설득력 있는 소피스트 앞에 작은 돌멩이를 놓는다. 돌멩이가 많은 쪽이 이기는 것이다.
따라서 말을 조리 있게 하고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사학’은 그리스 시대부터 중요하게 여겨졌고, 중세유럽에서도 대학의 중요 과목으로 인정받았다.
원래 log는 통나무를 의미한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옛사람들은 통나무에 글자를 새겨넣었다. 여기서 비롯된 말인 ‘logos’는 ‘글, 논리’를 지칭하는데,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상대방에게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기 위한 논리’를 일컫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합리적인 이치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논리와 증거를 갖추지 못하면 설득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김 씨는 정말 배은망덕한 사람이야!”라고 아무리 소리 높여 얘기한다 해도 왜 배은망덕한 지에 대한 근거를 내세우지 못하면 사람들은 설득되지 않는다.
파토스는 듣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말한다. 상대방의 심리 또는 감정 상태는 설득에 영향을 큰 영향을 미친다. 기쁘고 호감을 느낄 때의 판단은 고통과 적의를 느낄 대의 판단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A가 B를 만났는데 B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눈이 많이 충혈돼 있다.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A로서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생각하고 이렇게 말한다.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눈이 충혈된 것은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돼서 그런 겁니다. 제가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식품을 알고 있는데,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B는 과연 A의 말에 설득이 될까?
B가 재수를 한 아들이 이번에도 또 수능시험을 못 봐서 원하는 대학에 가기 어렵게 되어 마음이 괴롭고 잠도 못자고 있는 상태다. 그런 B의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건강식품으로 혈액순환을 촉진하라는 A의 설득은 번짓수를 완전히 잘못 찾은 것이다.
세일즈 관련 책에 자주 나오는 ‘누군가에게 부탁하러 갈 때 11:30 보다는 13:30에 가는 것이 좋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배가 고플 때 신경이 날카로와지지만 포만감을 느끼면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도 상대방의 심리상태, 즉 PATHOS를 고려하라는 것과 관련 있다.
에토스는 설득하는 사람의 고유한 성품, 매력도, 카리스마. 진실성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화자(話者)를 신뢰해야만 설득이 가능하다고 했다.
즉,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신뢰한다면, 그 사람이 비록 설득력이 떨어지고(로고스의 부족), 예민하게 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도(파토스의 부족), 그 사람에게 설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기둥도 예뻐 보인다’는 우리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이 논리적이고 훌륭해서’라기 보다는 ‘그 사람이 좋고 훌륭해서’ 그 사람의 말에 설득된다는 것인데, 아리스토 텔레스는 세가지 설득요소 중 에토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지극히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정치 세계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다.
C는 골수 야당지지자다. 대통령 선거 운동이 진행 중이라, 야당 후보와 여당 후보가 치열한 유세전을 벌인다.
어느 날 여당 후보가 유세를 하다 실언을 하고 말았다. C는 분개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최근 뉴스 봤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겠어”라고 비난했고, 인터넷에도 그와 같은 취지의 댓글을 여러개 달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2주일 후, C가 지지하는 야당 후보가 여당 후보와 비슷한 실언을 어느 유세장에서 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C는 당황했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린 뒤 야당 후보 선거 캠프 게시판에 댓글을 달았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실언할 수도 있습니다. 사과하고 적극 해명하면 됩니다.”
논리적으로만 따지자면 C는 야당 후보에게도 비난을 퍼부어야 한다. 하지만 C는 그러지 않는다.
왜? C는 야당 후보를 ‘좋아하고 지지하기 때문’이다.
보통 정치나 종교와 관련한 논쟁이 이성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은 로고스(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에토스(호감,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듯, 에토스는 한 순간에 생겨나지 않는다고 한다. 마치 지속적으로 적금을 넣듯 마일리지를 쌓는 방식으로 증가된다.
‘에토스를 이루는 요소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나는 기업체 강의를 갈 때 수강하는 분들에게 에토스를 간단히 설명하고 ‘여러분 조직에서 가장 에토스 지수가 높은 사람이 누구일지 무기명 투표를 해보겠습니다’라고 제안한다. 투표결과는 항상 한두 명에게 집중된다. 이는 에토스의 정확한 실체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호감과 진정성을 느끼는 대상은 분명 존재한다는 점을 알게 해준다.
이제 결론부분이다.
평소 행동을 통해 나의 호감도와 진정성을 인지시키고 그 사람과 신뢰의 다리를 구축한 다음(에토스), 그 사람이 당신의 마음을 받아들일 마음 상태일 때(파토스), 논리적으로 설득을 진행(로고스)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 아무런 신뢰관계도 구축되지 않고, 상대방의 심리상태도 파악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아무리 논리로 무장을 하더라도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실패하게 된다.
[권한이양 / 기업은 하룻밤에 없어진다 / 무능한 리더 / 안되길 잘했어 / 빗속에서 / 21세기 문맹자 / 실패가 오히려 움직이는 동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