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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Nov 10. 2015

협상, Say Yes가 아니라 Say No부터 시작하라

조우성 변호사의 협상 Must Know

협상장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자세로 협상에 임하겠다고 마음먹지만 실제로는 논리가 아닌 감정과 비이성적 생각이 협상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심리는 우리가 예상하는 만큼 합리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우리의 이성은 오히려 심리적 작용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데도, 우리는 이를 이성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착각한다.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라고 전제한 고전 경제학이 현실 사회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1950년대 이후에 심리학자들이 대거 경제학에 뛰어 든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존재로 파악한다. 심리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 같은 학자들이 중심이 된 ‘행동경제학’ 분야는 바로 이러한 불완전하고 감성적인 인간의 모습을 다룬다.     




‘Say No’ vs ‘Say Yes’     


용산 전자상가 중고 디지털카메라 샵.      


주인은 5O대 중반의 김 사장. 중견기업 임원에서 퇴직하고 소일거리 삼아 원래 좋아하는 카메라와 관련된 샵을 오픈했다. 그곳을 찾은 오씨(29세).     


취업준비 중인 오씨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별로라 중고 디지털 카메라 샵에 들른 것이다. 제품을 구경하다 6개월 전에 출시된 ‘올림푸스’ 모델이 중고로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신상품으로 나왔을 때 그 제품 소비자가격은 80만 원.     


중고로 나왔으니 얼마면 될까? 별도로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오씨는 그래도 중고니까 50만 원 정도에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씨가 그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을 본 김 사장님 생각.     

‘흠, 저 제품은 중고라고는 하지만 거의 신상품에 가까워서 70만 원 정도는 받아야 하는데, 손님은 과연 얼마에 구입하려고 할까?’     




오씨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카메라를 50만 원에 사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먹고 카메라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김사장은 70만 원에 이 카메라를 팔 수 있을지 고민했다.     




협상가들은 거래를 할 때 ‘결코’ 처음부터 yes라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처음에 이 설명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차피 수긍할 수 있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상대방도 기분 좋게 yes라고 해 주는 것이 나도 기분 좋고 상대방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쉽게 상대방 제안에 yes라고 하면 상대방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괴로워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위 사례에서 손님이 사려고 마음먹은 중고 카메라의 정상 판매가격은 70만 원이었다(물론 그 가격표시는 별도로 붙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손님은 그 카메라가 신상품일 때 가격이 80만 원이었기에 중고임을 감안한다면 50만 원 정도에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결국 겉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김 사장의 희망판매가격 ‘70만 원’과 손님의 희망구매가격 ‘50만 원’이 충돌한다.      


그런데 김 사장은 손님을 바라보면서 문득 예전 젊을 때 자기 모습을 떠 올렸다. 자기도 누구보다 카메라를 좋아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항상 아쉬워했던 과거 모습을. 그러다 보니 초라한 행색의 손님에게 마음이 갔다.          



경우 1 : 김 사장이 손님의 제안에 대해 처음부터 yes라고 할 때     


김사장은 손님을 보면서 자신의 예전 모습을 떠 올리고는 ‘그래, 저 손님이 얼마에 사려고 하든 내가 정말 기분 좋게 선선히 수용해야지’라고 좋은 마음을 먹었다. 


손님은 50만 원이라는 가격을 관철하려고 비장한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와서 김 사장 앞에 놓고서는 “이 카메라 50만 원에 파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러자 김사장은 웃으면서 “네, 그렇게 하세요”라고 기분 좋게 답변한다.     


순간, 손님의 표정은 황당 그자체!



왜 그럴까? 분명 자신이 원하는 가격대로 카메라를 사게 되었는데.      

자신의 제안에 대해 상대방이 너무도 선선히 yes라고 대답할 경우 손님은 두 가지 생각에 사로 잡힌다.     


첫째, 무언가 내가 모르는 제품상의 하자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이렇게 쉽게 제안을 수용하는 것일거야.


둘째, 내가 왜 좀 더 싸게 제안하지 못했을까? 40만 원이나 30만 원을 제안했어도 수용될 수 있었을텐데. 아, 난 바보야 바보.     


김 사장은 뿌듯한 마음으로 ‘내가 이 손님을 위해 좋은 일 했어’라면서 미소 띤 얼굴로 카메라를 포장해 주지만, 정작 손님은 괴로워하면서 의구심에 가득 찬 눈으로 그 카메라를 꼼꼼히 살펴본다. ‘도대체 무슨 하자가 있는 걸까? 내가 발견하지 못한 하자가 뭘까?’, ‘아... 조금 더 깎을 수 있었는데...’     




경우 2 : 김 사장이 손님의 제안에 대해 No라고 버티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yes라고 할 때


상황을 바꿔보자. 


손님은 카메라를 들고 와서 ‘이 카메라 50만 원에 주세요’라고 비장하게 말한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이 카메라는 저희 샵에서 70만 원에 팔고 있습니다. 50만 원에는 곤란합니다. 50만 원 정도를 생각하신다면 다른 모델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 바로 옆에 있는 Nikon 중고 모델 중에 50만 원에 구입할 수 있는 훌륭한 모델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손님은 사정을 한다. “사장님, 정말 제가 이 카메라가 꼭 갖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50만 원에 어떻게 안 될까요?” 


김 사장은 다시 한 번 완곡한 거절을 한다. “허허 참. 저희도 남는 게 있어야 장사를 하죠. 50만 원이면 저 Nikon 중고 카메라를 추천해 드립니다.”     


손님은 또 다시 애원한다. 김 사장은 한숨을 쉰다. 


“휴. 손님을 보니 옛날 내 생각이 나는군요. 나도 카메라는 좋은 것 갖고 싶은데 주머니 사정은 안좋고, 그래서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답니다. 음, 이 카메라 주인이 따로 있었나 봅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이 카메라를 50만 원에 선물인 셈 치고 드리지요. 대신 카드 말고 현금으로 결제 가능할까요?”


라고 말한다. 그러자 손님은 당연히 된다면서 현금으로 결제하고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카메라를 받아 간다. 집에 가면서 애인에게 전화까지 해서 자신이 오늘 협상을 잘한 덕에 70만 원짜리 카메라를 50만 원에 살 수 있었다고 자랑까지 한다.     




‘경우 1’과 ‘경우 2’의 차이     


‘경우 1’과 ‘경우 2’의 차이라고는 김 사장의 반응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 사장이 처음부터 기분 좋게 양보해 주었을 때보다, 안된다고 거절하다가 승낙해 준 경우 상대방은 더 큰 만족감을 느끼며 행복해 한다. 

더구나 김 사장이 처음부터 yes 라고 말했을 때, 상대방은 의심하게 되고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인 양 괴로워한다는 점이다. 과연 왜 이런 결과가 발생할까?     



처음부터 Yes라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     


첫 번째 이유는 쉽게 Yes라고 함으로써 상대방의 성취욕을 줄여버릴 수(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힘들게 획득한 것’에 대해서 더 많은 애착을 느낀다. 일종의 보상심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말 소중한 것인데도 너무 쉽게 얻도록 해버리면 상대방은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된다.      


두 번째 이유는 너무 쉽게 Yes를 하게 되면 또 다른 요구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마음으로 상대방의 제안을 승낙했는데, 상대방은 이를 고맙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 내 요구가 받아들여지네. 그럼 이건 또 어떨까?’라는 마음으로 또 다른 요구를 야금야금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일단 No라고 선언을 한 뒤 이를 Yes로 바꾸려면 다른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야금 야금 추가적인 요구를 하지 못하게 사전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효과가 있다.     


세 번째 이유는 No를 함으로써 당신 입장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Anchor-Effect(닻내리기 효과)라는 말이 있다. 당신이 먼저 표명하는 그 입장이 협상의 starting point가 되면서 기준점이 된다. 당신이 너무 쉽게 Yes라고 함으로써 출발점, 기준점을 당신에게 불리하게 설정하고 시작한다면 나중에 당신이 양보할 수 있는 입지는 훨씬 좁아진다. 오히려 나중에 가서 상대방에게 인색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처음에는 No라고 대응하면서 어느 정도 여유를 확보해 놓은 뒤, 협상 상대방과 인간적으로 친해졌을 때 마치 상대방을 배려하듯이 양보를 하게 되면 그 양보의 효과는 훨씬 극대화될 수 있다.  결국 No라고 말하는 것은 당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첫걸음이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정보 파악이 안 되어 있을수록 No로 시작하라     


“No로 시작하라(Start with No)”라는 책을 쓴 짐 캠프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때에는 일단 NO 전략으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협상은 ‘Yes’도 아니고 ‘글쎄요’도 아닌 ‘No’로 시작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의 주장을 정리해 본다.     


No로 시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 때문이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인데, 내게도 이익이 되고 상대방도 이익이 될 수 있는 윈윈협상을 위해서는 상대방이 손해 보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취할 수 이익이 얼마가 되는지를 우선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Yes’로 협상을 시작한다면, 협상의 가장 중요한 정보가 파악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협상의 기본은 정보다. 올바른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약점이 무엇인지, 그로 인해 내가 이익을 얼마나 취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내게서 이익을 취하려고 할 때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약간의 정보는 상대에게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협상은 ‘No(노)’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Yes’면 모든 것이 오케이기 때문에 내가 상대에게 정보를 줄 여지도, 상대가 나에게 정보를 줄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Say No를 해야 하는 이유를 ‘정보취득’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신선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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