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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an 16. 2016

체포되면 안 됩니다. 꼭 자수해야 합니다!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에 따르는 형벌의 무게가 어느 정도일지 정확히 알기란 어렵다. 범죄의 종류와 그에 대응하는 형벌이 복잡한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엔 특히 수많은 특별법이 존재한다. 형벌을 무겁게 규정해 두면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지, 범죄 유형을 더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형벌도 강화시키는 추세다.


‘법에 대한 막연한 감정’이 ‘법률의 구체적 내용’과 어긋날 때 사람들은 ‘아니 이 정도였어?’라고 놀라기도 한다. 특히 경제사범의 경우가 그렇다.      


밤 10시 반.


내일 아침에 있을 재판기록을 검토 후 퇴근을 준비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인 문 사장.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문 사장은 대뜸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문 사장이 세무 공무원에게 뇌물을 줬다는 내용의 투서가 검찰에 제출됐다. 검찰은 문 사장을 긴급체포하면서 동시에 문 사장 회사에 대해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 보통 검찰이 투서만 갖고서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데, 긴급체포, 압수, 수색을 동시에 진행한 것을 보면 투서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었던 모양.     




검찰이 피의자를 긴급체포한 후에는 48시간 내에 그를 구속할 지 말 지 결정해야 한다. 문 사장은 30시간 가량 조사를 받다 방금 풀려난 것.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뇌물... 줬냐?”


“뇌물은 무슨... 근거 없는 얘기야. 누가 날 모함한 거지. 누군지 대강 감이 와. 젠장.”


검찰은 문 사장에게 뇌물 제공 사실을 자백하라고 몰아 붙였다. 문 사장은 ‘안 준 걸 어떻게 자백하란 말입니까’라고 버텼다. 문 사장이 예상보다 강하게 부인하고 막상 혐의를 입증할 객관적 물증이 나오지 않자 초조해진 검찰.     


검찰은 회사 장부를 문 사장에게 들이 밀고서 출금 내역을 하나 하나 캐물었다. 사장이 세부적인 지출 내역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검찰은 ‘이대로는 보낼 수 없다’며 뭔가 불법적인 사항을 잡아내려 혈안이 되었다.     


“수사계장이 내게 이러더군. ‘회사 운영하면서 불법 하나 저지르지 않았다면 누가 믿겠어요? 뭐 하나 자백하고 나가는 게 어때요?’ 정말 황당하더라. 죄가 없으면 그냥 내보내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문 사장이 출금 내역을 살펴보니 본인이 생각해도 미심쩍은 부분들이 보였다고 한다.


“꼭 불법적인 거라기보다는,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설명하기 곤란한 것들이 있겠더라구.”     




수사계장은 누군가에 자금을 건넨 걸 원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문 사장은 고민하다 그나마 제일 약할 것 같은 ‘범죄사실’ 하나를 털어놓았다.     


문 사장은 3년 전 B 상호저축은행에서 10억 원을 대출받았는데, 대출 과정을 도와 준 은행 최 상무에게 리베이트로 5천만 원을 줬다. 최 상무가 관할하는 팀원이 20명 정도였는데 은근히 팀 운영비 등을 바라는 눈치가 보여 고마운 마음도 있고 해서 최 상무에게 운영비로 쓰라고 5천만 원을 건넸단다. 그 뒤로도 몇 차례 최 상무를 만났는데, 받은 돈으로 팀원을 위해 잘 쓰고 있다는 감사 인사도 받았다.     


“의외로 상호저축은행 운영경비가 인색하더라. 5천만 원이 크다면 크지만 요즘 세상에 그리 거액이라 볼 수도 없고, 무엇보다 최 상무는 그 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고 회사를 위해 쓰는 것 같았어. 그래서 그걸 얘기했지.”     


검찰은 ‘좀 더 화끈한 것이 없나’고 계속 추궁했지만 문 사장은 ‘이것 밖에는 없다’고 끝까지 버텨 이제야 석방된 것.     


막상 검찰청을 나와 숨을 돌린 문 사장은 덜컥 최 상무가 걱정되었다.     


“내 진술 때문에 최 상무가 조사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양반에게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리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은데. 혹시라도 문제가 된다면 내가 비용을 댈 테니 조 변호사가 변호를 해주면 좋겠어.”     



그리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나는 서둘러 법전을 펼쳤다.     


‘상호저축은행 임원이 공무원은 아니니까 직무 관련해서 돈을 받았다고 해도 뇌물죄는 아니고... 형법상 ‘배임수재죄’가 성립하겠군.‘  

   

“형법 제357조 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     


그런데 왠지 금융기관 임원이라는 신분이 마음에 걸렸다. 

좀 더 법전을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줄여서 ‘특경법’)에 이런 조항이 있었다.     




“특경법 제5조(수재 등의 죄) 

①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이 그 직무에 관하여 금품이나 그 밖의 이익을 수수(收受), 요구 또는 약속하였을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④ 제1항의 경우에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금품이나 그 밖의 이익의 가액(이하 이 조에서 "수수액"이라 한다)이 3천만 원 이상일 때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 처벌한다.

1. 수수액이 1억 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2. 수수액이 5천만 원 이상 1억 원 미만일 때 : 7년 이상의 유기징역”     


최 상무는 5천만 원을 받았으니 특경법 제5조 4항 2호에 해당되는데.

그럼 이게 뭐야, 헉! 7년 이상의 유기징역...     


심각했다.


형법만 적용된다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따라서 죄질이 크게 나쁘지 않다고 판단되면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기관 임직원에게는 특경법이 우선 적용된다. 특경법 상 법정형은 7년 이상의 유기징역. 벌금형이 선택적으로 부여되지 않았으므로 벌금형을 선고할 수 없고 오로지 징역형만 선고할 수 있다. 그런데 더 문제는 7년 이상이라는 부분. 7년 ‘이상’이므로 판사가 최 상무에게 선처를 베풀려고 해도 선고할 수 있는 최저한(미니멈)이 ‘징역 7년’이다.     




“문 사장, 이거 심각하다. 최 상무는 7년 형을 받을 수 있는 죄를 범한 거야.”     

문 사장은 깜짝 놀랐다.


“뭐? 7년 형?
아니 고작 5천만 원 받은 걸로 7년 형이 말이 돼?
무슨 법이 그래?”


“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구.”

“그럼 무조건 7년 형을 산단 말야? 좀 깎이는 거 없어?”     


물론 그 형을 한 번 깎을 수 있다. 전문용어로 ‘작량감경(酌量減輕)’. 전과가 없고, 깊이 반성하는 등의 사정이 있으면 원래의 형벌에서 1/2을 깎을 수 있다. 이 적용을 받는다면 최 상무에게는 최저 징역 3년 6개월 형이 선고될 것이다.     


“한 번은 깎일 수 있는데
그래봐야 최저가 징역 3년 6월이야.”     


“씨... 뭐가 그래? 아 맞다. 집행유예라는 게 있잖아? 징역 3년 6월에 집행유예 5년, 뭐 이렇게 되면 일단 석방되는 거 아냐?”     


문 사장 말대로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해 준다면 일단 석방될 수 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 함은 ‘당신의 죄는 1년간 교도소 생활을 해야 마땅하나 전과도 없고 깊이 반성하니 일단 석방해 주겠소. 그래서 2년 동안 아무런 일이 없으면 1년간 교도소 생활을 한 것과 같이 취급해 주겠소.’라는 것. 


형사 재판을 받는 사람은 ‘징역 6월’보다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더 선호한다. 집행유예가 부과되면 일단은 석방될 수 있으니.     


그런데 문제는, 법원이 집행유예를 해 주기 위해서는 본형(本刑 ; 기본이 되는 형)이 징역 3년 이하여야 한다. 최 상무의 경우 법정형이 징역 7년 이상이라, 최하한인 징역 7년을 선택한 다음 1번 깎는다고 하더라도(작량감경), 본형(本刑)은 징역 3년 6월이 되어 징역 3년을 초과하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붙여줄 수 없다. 


결국 최 상무는 한번 감경된다 하더라도
3년 6개월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어야 한다는 결론.     




문 사장은 당황했다. 가벼운 범죄일 거라 생각했는데 3년 6개월을 교도소에 있게 할 정도의 중죄(重罪)였다니.


“조 변호사,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최 상무에게 미안해서 어쩌냐...”     

나는 급히 법전을 뒤적였다. 아 맞다!     


“문 사장, 딱 하나 방법이 있어.”     


범죄자가 수사기관에 출두해서 ‘제가 이러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처벌해 주십시오.’라고 밝히는 것을 자수라고 하는데, 우리 형법에 따르면 범죄자가 자수를 한 경우 형벌을 감경해 줄 수 있다(형법 제52조).     


최 상무는 반드시 자수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징역 3년 6월에서 다시 한 번 더 감경을 받아 ‘징역 1년 8개월 이상’이 되는데, 이 경우는 본형이 3년 미만이라 집행유예가 가능하다.


자수의 반대말은? ‘체포’다. 


문 사장은 이 상황을 최 상무에게 알려달라고 내게 울다시피 사정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는 문 사장으로부터 최 상무의 전화번호를 건네받아 급히 그에게 전화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 내 전화를 받은 최 상무. 상황을 최대한 차분히 설명했다.


최 상무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럼...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체포되면 곤란합니다. 제 생각에는 오늘은 아니어도 내일쯤은 체포하러 수사관이 갈 수도 있거든요.”


최 상무는 상황을 파악하고 그 즉시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다음날 오전 최 상무 직장으로 수사관들이 찾아갔지만 그들은 최 상무를 만날 수 없었다.     




이틀 후 최 상무는 내 사무실에서 자신의 범행(대출받은 고객으로부터 뒷돈을 받은 것)을 자세하게 기재한 ‘자수서(自首書)’를 작성했다.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물어봤더니 거의 대부분 팀원들 활동비와 회식비로 썼단다. 이를 입증할 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이 아닌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이미 성립한 배임수재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서울중앙지검에 있는 후배 검사에게 자수할 건이 있다고 연락을 하고는 최 상무와 같이 검찰청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죄를 전부 인정했으므로 후속 절차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1달 반 만에 형사재판까지 다 마무리되었다. 나는 최 상무의 변호인으로서, 최 상무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 돈을 상호저축은행 활동비로 사용했던 점, 그에게 전과(前科)가 없는 점, 현재 노모(老母)가 병석에 있는 점 등을 감안하여 최대한 선처해 달라는 취지로 변호했다. 변호를 하면서 최 상무와도 인간적으로 친밀해졌다.     


“처음엔 진짜 억울하더군요. 문 사장에게 어떻게 복수할까 하는 생각에 잠이 안 왔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문 사장의 다른 비리도 있거든요. 아마 문 사장이 그런 사정까지는 변호사님께 말 안했을 걸요? 기분 같아서는 그 내용까지 전부 수사기관에 불어버리고 싶었습니다.”     


1심에서 최 상무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형과 추징금 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최 상무는 1심 결과를 수긍하고 항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 상무는 집행유예 형을 받았기에 인사규정상 더 이상 상호저축은행에서 근무할 수 없어 면직처리 되었다.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되고 공식적으로 사건을 종결하던 날 최 상무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이유 없이 받은 돈은 반드시 나중에 토해 내야 한다는, 그리고 토해 낼 때는 복리(複利) 이자를 붙여서 토해 낸다는 진리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좋은 공부 했습니다.”     


‘복리 이자’라는 말이 가슴에 긴 여운을 남겼다.

과연 우리는 오늘 어떤 ‘원금’을 인생 계좌에 예금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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