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衣般礴(해의반박)*
庖丁游刀無碍挂(포정유도무애괘) 포정의 칼 놀림은 걸림이 없고,
元君一見認畵士(원군일견인화사) 원군은 화사를 한눈에 알았네.
觀書不食旣飽滿(관서불식기포만) 글씨를 보니 먹지 않아도 배 부르고,
洗中回坐斟灑落(세중회좌짐쇄락) 마음 씻고 돌아 앉아 쇄락을 짐작하네.
2021년 4월 22일 아침. 어제 우연히 본 추사의 글씨 한 점에 빠져 오늘 아침까지 그 생각이 가득하다. 낮잠을 자는 집이라는 뜻의 午睡堂이라는 편액인데 고고학자인 최순우 선생이 이 글씨를 좋아하여 스스로를 오수 노인이라 불렀다 한다. 글씨를 쓴 추사가 졸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午자의 가로 획은 사선에 가깝고 睡자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 堂자는 졸음이 밀려오고 귀찮았는지 초서로 흘려버렸다.
하지만 이 엉성하고 졸렬해 보이는 글씨 세자가 이렇게 오래 머리에 떠도니 하는 수 없이 몇 자를 욱여넣어서 글로 옮겨본다.
* 解衣般礴(해의반박): 『장자』 전자방에 있는 말. 뜻은 옷을 풀어헤치고 편하게 앉아 있는 자세를 이야기한다. 이 말이 중국에서는 서화 창작의 요체로 받아들여진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중국 서예의 종조로 여겨지는 蔡邕(채옹, 133~192, 후한 말기의 학자. 자는 伯喈(백개)이다. 전한의 개국공신 채인의 14 세손으로 학문과 글씨에 뛰어난 재주를 가져 명성이 높았다. 서예의 기법인 영자팔법의 고안 자라고도 알려져 있다.)에 의하면 “글씨는 마음을 흐트러트리는(散)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때 흐트러트린다는 것은 잡다한 생각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 즉 본성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하여 격식에 얽매이지 말고(해의반박, 즉 옷을 자유롭게 하고 자세는 아주 편하게 하여)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뜻이다.
* 庖丁: 『장자』 양생주에 등장하는 고기 잡는 사람. 중국의 서화 이론가들은 포정이 소를 잡으며 이룩한 경지와 서화 창작의 경지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는데 특히 대만의 유학 이론가 서복관(쉬 푸관)은 포정의 解牛를 서화 창작의 終條理(맹자에 등장하는 말로서 모든 이론의 종결형의 의미가 있다. 공자를 설명하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 (善刀而藏:선도 이장 – 포정과 같이 칼을 잘 갈무리함.)
* 元君一見認畵師: 『장자』 전자방 제7장의 주요한 내용.
* 林逋(임포, 967∼1028) 宋代 초기에 활동한 은일 시인이다. 그의 시에 의하면 “좋은 글씨나 그림을 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라고 했다.
* 灑落(쇄락): 기분이나 몸이 개운하고 깨끗함을 뜻하는 말이다. 주자학의 시조인 주자(주돈이)가 강조한 마음의 자세. 논어 선진 25장에 있는 증점의 이야기에서 유추된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