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인상주의 화가들의 열정적인 탐구와 다양한 미적 실험은 마침내 추상회화라는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게 된다. 20세기 초의 과학적 성과, 즉 상대성 이론, 양자론, 원자 분열 등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裏面, 즉 자연의 내부 요소와 그 핵심에 관심을 갖게 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그전의 자연현상과 법칙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각자의 주관적인 개념 정립과 사유를 통해 대상의 근원 혹은 본질에 접근하고자 했다. 이러한 세계의 영향으로 예술가(특히 화가)들은 더 이상 자연의 외형을 재현하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최초의 미술 운동인 야수주의(Fauvism)의* 대표적인 화가인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색채를 형태와 같이 구조적으로 파악하면서 색채 자체를 독립 존재로 파악하여 외부로 드러나게 하였다. 마티스에 있어서 창작행위는 개별 작품이(회화를 포함하여) 어떤 이야기나 상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를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인상주의자들은 빛을 포착하기 위해 광선이 사물에 닿아 반사해내는 것을 추구하여 회화 공간 속에서 광선의 幻影을 만들어 냈다. 반면에 마티스는 빛을 사물의 반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안료(물감) 고유의 색채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기초 아래 마티스는 색채의 대비를 통해 회화 공간 내부에서 색채를 통한 빛을 만들었으며, 안료의 강렬한 원색은 각각의 빛을 발산하면서 관람자에게 다가오게 하였다. 즉, 마티스는 앞서 세잔이 시도했던 회화 공간의 분할과 다시점에서 비롯된 구조적 질서와 견고한 형태를 색채라는 도구를 통해 실험하였다. “세잔은 우리들의 선생이다.”라고 말하였듯이 그는 세잔을 통해 회화의 조형성을 파악하였고 그가 이룩한 색채의 조화와 구성은 세잔의 견고한 형태가 그 바탕이 된 것이다.
마티스는 각각의 색채가 가지는 자율성의 실현을 통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화가 자신(주관적 객체로서의 ‘나’ – 실존의 나)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현대미술의 자아 개념에 다가간다. 주제를 인식한다는 것은 회화와 ‘나’ 자신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미술가들은 ‘시각의 원인’에 관심을 가지면서 ‘내면의 자아’를 화폭에 담기 원했기 때문에 종래의 사물의 재현을 위한 원근법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캔버스는 화가 내면의 자아와 관념, 그리고 사유 작용을 표현하는 독립된 존재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즉, ‘자아’의 대상물로서 세계를 바라보게 되면서 일어나는 결과가 회화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널리 인용된 것이다. 미술은 ‘나 자신에 대한’ 자각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직관’으로부터 태어난다. 그러므로 화가들은 자신의 감정에 영양분을 주고 무의식의 힘을 키우기 위해 이론적 연구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마티스의 회화에는 상반된 요소, 즉 단순성과 장식성이 함께 공존한다. 그는 그의 작품 속에서 가능한 자연을 단순화하려 한다. 마티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단순함을 장식성으로 전환시키면서 실체의 복잡성을 극복하기 위해 형태를 극단으로 몰아간다. 단순성은 원근법과 명암의 제거로 인한 회화의 평면성으로 부터 획득되고, 장식성은 중첩 배열과 색채 조합을 통해 음악적 리듬으로부터 획득한다. 마티스의 많은 작품들은 단순한 형태를 지향할 뿐 아니라 색채도 소수의 색으로 제한하여 색의 사용에 대한 단순성을 보여준다. 그는 색에서 중요한 것은 색채의 다양성이 아니라 선택과 조화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일곱 개의 음이 음악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듯이 소수의 색채와 단순한 형태는 오히려 생명감 넘치는 리듬을 발산하게 한다고 믿었다. 이 리듬 체계는 복잡한 장식성과 정제된 단순성이라는 두 개의 대립되는 요소를 결합시켜 현대적인 생명력을 가진 추상미술의 창조와 발전에 바탕이 되었다.
* 야수주의는 따로 설명함.
표지 그림은 La Danse (first version), 1909,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