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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28. 2021

김지의 童子牽驢圖

개울이 흐르고 있다. 그 개울 위에 작은 다리가 있고 그 다리 위에 소년이 나귀 고삐를 끌어당기고 있다. 하지만 나귀는 좀처럼 딸려 오지 않으려 한다. 소년이 나귀를 끌며 낑낑대는 느낌과 소리, 그리고 소년에게 끌려가지 않으려는 나귀의 씩씩대는 거친 힘씀이 화면에 가득하다.  


바로 직전까지 나귀는 계곡 이곳저곳에 풍성하게 나 있는 싱싱한 풀을 뜯으며 언제인지도 모를 아득한 옛날의 자유로움을 맛보았을 것이다. 또, 개울가에 졸졸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을 마시며 마구간에 묶여 마시던 탁한 물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소년이 나타나 이 모든 평화를 깨고 자신을 끌어서 어디론가 가려고 하니 버틸 수밖에 없다.


통상 나귀는 물을 무서워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그림의 나귀가 물이 무서워 버티고 있다고 보는 것이 보통의 해석이다. 그러나 동양의 여러 그림에서 보이는 사물들은 실상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 자신의 투영 물에 가깝다. 즉 자신의 마음과 태도, 그리고 처지와 입지를 사물을 통해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그림의 나귀는 화가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면 화가는 어떤 심경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 나귀는 모든 것이 제공되는 여건(여물, 물, 마구간)에 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제공되는 여건 탓에 코뚜레를 코에 꽂은 채 주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주인이 가자는 대로 가야만 한다. 심지어 이렇게 좋은 산과 계곡에서 잠시 틈도 주지 않고 주인은 자신을 끌고 어디론가 가려는 것이다. 


이것은 관직에 나아가 벼슬을 제수받고 권력을 누리며 재물을 획득하는 사람의 처지를 빗대어 묘사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김지(金禔-본래 ‘제’이지만 이름일 때는 ‘지’로 읽는다. ‘시’로 되어있는 것이 많은데 福이라는 의미로 쓰였다면 ‘지’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1524~1593)이다. 조선 중기의 권신이었던 김안로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권모술수의 화신이었지만 김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화가로서 이름을 알려져 있다. 그의 손자 김식(金埴)도 유명한 선비화가였다.


이 그림은 조선 중기 절파 화풍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절파 화풍이란 중국의 명나라 초기 중국 남부 절강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군의 화가들의 화풍을 일컫는데 대표자는 대진(戴進, 1388~1462)이다. 그들의 화풍의 특징은 부벽준(斧劈皴- 준법이란 그림을 그리는 붓의 형세를 뜻하는 말로서 부벽준은 마치 도끼를 찍는 것처럼 붓을 툭툭 찍어 산 위에 나무나 바위의 괴량감을 표현하는 법이다.)과 피마준(披麻皴-마피준으로도 부른다. 마치 삼베의 섬유처럼 산의 표면을 그리는 방법이다.)그리고 북송의 이곽파에서 배운 해조묘(蟹爪描- 나무의 나뭇잎을 게의 발톱처럼 묘사한 방법)등이다. 절파 화풍의 화면의 구성은 화면의 한쪽에 치우쳐 사물을 묘사하고 먹의 사용에 있어서는 濃淡의 대비를 강조하여 사물의 경계를 뚜렷하게 하였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화가 김지의 마음을 대변하는 나귀의 태도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마음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다. 이 마음의 모습조차도 순순하게 우리의 것은 아니었는데(예나 지금이나 먹물이 머릿속에 들어가면 그저 남의 것을 모방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사실 중국의 송나라에서 출발하여 그 뒤 원나라와 명나라를 거치면서 이어져 온 도교적 유행, 즉 몸은 저잣거리에 있으나 마음은 늘 산림을 꿈꾸는 사족들의 유행 같은 것이었다.


그럼 소년은? 당연히 선비들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그 모든 장치들의 표상일 것이다. 어린아이가 가지지 못하는 것은 정연한 논리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그런 연유로 어린아이가 나귀를 끄는 것으로 그림은 묘사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 그림에는 畵題詩가 없다.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오로지 여백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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