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경 여러 미술가들이 추상을 통해 새로운 미술을 실험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다양한 소재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미술의 존재와 목적에 중요한 의문을 가졌고 동시에 再現에 대한 막연한 의문을 넘어 완전한 결별에 이르려는 비슷한 열망들을 가지고 있었다.
- 형태의 단순화
추상미술 발전의 기폭제가 된 것은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의 큐비즘이다. 1910년경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들을 통해 시각에 기초한 회화와는 거리가 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즉, 형태의 극단적인 斷片化를 통해 기존의 회화적 표현방식과 근본적인 단절을 시도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세잔의 유산을 자신 만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피카소는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접근하여 마지막 이미지가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될 때까지 다양한 시각들을 병렬적으로 결합시켰다. 1910년에 그려진 Woman with Mustard Pot(머스터드 그릇과 여인)에서 형태를 인위적으로 조합하여, 바라보는 상식적 지각 행위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개념화된 상황을 조성하여 거의 새로운 발명에 이르는 과정을 표현하였다. 이미 자연스러운 상황에 대한 의존과 기대는 희박해졌다. 미술가 혹은 화가는 회화적 구조를 창조하기 위해 자연스러움으로 위장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대신 주제를 환기시키고 형태를 창의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추구하여 자연의 모방이 차지했던 회화 공간의 새로운 주인을 만들었다.
피카소의 절친(악연과 인연의)이며 경쟁자이고 예술적 동반자였던 브라크의 탐구는 풍경, 초상화, 정물에 대한 것으로서 누드 구성에 대한 피카소의 실험을 보충하였다. 브라크는 “르네상스 전통 전부가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 미술에 성공적으로 부과되어 온 원근법의 엄격하고 획일적인 법칙을 교정하는 데 4세기나 걸린 것은 지독한 실수였다.( Oxford Art Online, "Georges Braque")”라고 언급하고, 1909년부터 1911년 사이에 제작한 작품에서 이러한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피카소의 작품처럼, 브라크의 큐비즘 그림도 점점 난해해졌다. 또한 화면에서 형상과 바탕을 단색조로 획일화하고 그것들을 통일시키는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형상과 바탕이라는 두 영역은 거의 구별을 할 수 없게 된다. 한편으로 이러한 접근방식은 외양을 지닌 외부 세계와 절연된 자기 충족의 미술로 향하게 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피카소와 브라크 둘 다 자신의 그림에서 아직까지는 여전히 주제를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이를테면 그들은 명백한 추상과 암시된 재현 사이에서 긴장감을 즐겼으며, 이러한 두 가지의 상반 요소들을 대립시킴으로써 순수 추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서도 비교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른 화가들이 형태의 단편화를 결국 추상으로 밀고 나아갈 무렵, 1912년부터 피카소와 브라크는 그들의 주제를 나타낼 새로운 방식으로 콜라주와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여전히 색채를 사용하지만, 자연의 관습에서 더욱 벗어나게 된다. 그들은 커다란 조각으로 오려낸 종이와 천을 작품 표면 위에 붙였다. 그 위에 몇 개의 선을 가미함으로써, 추상적인 회화적 하부구조 위에 새로운 이미지를 건설하였다. 그들이 회화에 사용한 이 새로운 방식은 이후 추상미술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반적인 회화와 파피에 콜레의 결정적 차이는 눈속임으로 그리는 사물 대신에 회화 속에서 진짜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완성된 미술작품이 더 이상 사물 세계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물처럼 우리의 세계에 참여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길을 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