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내 1000번 째 글.

by 김준식

1.

브런치(Brunch)라는 가상공간이 있다. ‘DAUM’이 제공하는 것으로서 약간의 가입조건을 거치게 만들어서 ‘작가’라는 호칭을 주기는 하는데 사실은 별 의미가 없다. 어쨌거나 그 브런치에 글을 처음 올리기 시작한 것은 2016년이다. 약 5년 만에 1000개의 글을 올리게 되었다. 사실은 150편 정도를 지난해 지웠기 때문에 1000편이 이미 넘은 셈이기는 하다. 1년에 약 200편을 써야 하니 한 달에 17편 이상을 지속적으로 써야 가능한 분량이다. 때론 긴 글도 있고 때론 짧은 글도 있다. 어쨌거나 1000번째 글을 올리기 위해 오늘의 주제를 정하면서 조금 머뭇거리는 저녁이다. 1000번째 글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 끝에 이 글을 쓴다..


2.

시간과 기억


우리는 항상 기억하고 망각하기를 반복한다. 물론 많이 기억해낼수록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때로는 망각해야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특히 어렸을 적의 추억은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심지어 아이가 어른이 된 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이 추억(기억)은 희미하게 잊혀 프루스트의 마들렌이나 조이스의 ‘어두운 곳’ 속에서 고치처럼 숨어 있다가 ‘우연한 환경’으로 되살아 날 때, 아름다운 기억으로 어른이 될 당사자에게 영향을 준다. 모든 것이 너무나 또렷하다면 그것은 현재의 연속일 뿐이다. 기억은 잊힘으로 과거가 된다.


과거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현재가 뒤바뀔 수도 있다. 이처럼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은 옛날부터 다양한 양상을 띠며 진행되었다. 과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Henri Bergson(앙리 베르그송)이 있다. 베르그송은 그의 책 Matière et mémoire(물질과 기억)에서 인간은 과거를 통합하여 엄청나게 많은 기억들을 활용하여 현재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무용수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가 과거의 수많은 동작 경험들을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 통합할 수 있기 때문이듯이, 사람도 과거의 경험들이 이루어놓은 방대한 흐름을 현재의 행동이나 사고 속에 자유로이 편집할 수 있고, 그리하여 더욱 충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의 의견에 공감한다. 특히 과거 자체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각각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각자 과거를 이해하는 방향과 이해하려는 과거의 기억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각각 과거가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지나온 시간의 좌표마다 형성되었을 미세한 결절 점(수학적으로 함수 관계에 있을 수도 있다.)들이 연결된 곡선을 과거 혹은 현재 미래라고 부르기로 가정한다면 사물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 결절점(좌표)의 형성 원인인 Y축과 X축의 값일 텐데, 이 값은 프루스트의 마들렌이나 조이스가 말한 우연한 환경일 수도 있고 베르그송처럼 하나의 값으로 표현되는 수많은 조직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시간은 결정적으로 내 기억을 꿰는 꿰미인 셈인데, 역설적으로 이 시간의 단절을 통해 기억을 봉인하거나 혹은 그 기억의 원인 값을 무효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인데 기이하게도 아직도 존재하는 시간이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시간 속에서 내 생각의 변화를 본다.



천 번째 게시물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오래 했다. 결국 기억이라는 것에 생각이 멈췄다. 아무도 누구도 각자의 기억을 알아주지 않아도, 각자의 삶은 항상 유지되고 또 기억이 생성, 소멸되듯이 마찬가지로 내 1000개의 이야기도 이어지고 유지될 것이다. 문득 아라비안나이트가 생각난다. 그 아라비안나이트만큼은 비교도 안 되는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참 1000이란 숫자가 묘한 느낌을 준다.


표지 그림은 달리의 그림 "La persistencia de la memoria(기억의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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