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제자들에게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서운해하지 않는” 군자가 되라고 가르쳤으나 제자들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여전히 원망스러웠나 보다. 어느 날 제자들을 불러 앉혀 놓고 물었다.
“너희들이 평소에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찌하겠느냐?”
이에 '공자'의 대표 제자랄 수 있는 자로, 염유, 공서화 등은 만승, 천승을 읊으며 정치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어떻게 굳힐 것인지 원대한 포부를 내세운다. 그런데 무심히 악기를 연주하던 증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다.
“늦봄에 봄 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을 쓴 어른 5,6명과 동자 6, 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에서 바람 쐬고서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
'공자'는 감탄하며 너와 함께 하겠다고 화답한다. 50이 넘은 노구를 일으켜 14여 년간 중원을 주유하며 무도한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실천한 이가 '공자'다. 그런데 이 대화는 진정 '공자'가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짐작케 하니 그의 행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공자'의 이런 선택에서 ‘장자’가 일찍이 말했던 ‘부득이(不得已)한 삶’의 모습을 본다.
‘장자’는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이야말로 “그 능력 때문에 제 삶이 괴롭혀지는 셈”이라고 사당 나무가 된 상수리나무의 생에 빗대어 말한다.(「장자」 인간세)
상수리나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쓸모 있는 데가 없기를 오랫동안 바라 왔다. 가령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어찌 이토록 커질 수 있었겠는가? 너도 나도 같은 하찮은 것이다. 어찌 서로 하찮다고 헐뜯겠는가?”
상수리나무는 스스로 하찮다 했지만 실제로 이 나무의 위용은 대단하다. “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가릴 정도이며, 재어보니 백 아름이나 되고, 그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정도이며, 여든 자쯤 되는 데서 가지가 나와” 있다. 이런 나무를 보면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짜면 곧 썩으며, 기물을 만들면 곧 망가지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생긴다”며 쓸모없다고 재단하는 인간의 기준.
자연이 창조한 웅대한 장관을 있는 그대로 누릴 줄 모르는 무지한 인간의 초라한 정신세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장자’는 그런 인간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일상적 이해를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공자'가 제자들과 나눈 대화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넓은 땅을 소유하고 수많은 사람을 거느리더라도 그 또한 인간이 만든 울타리이니, 그 너머에 가없는 자연이 빚어내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것만 못하다.
‘인간세’의 마지막은 『논어』의 ‘미자편’에 수록된 초나라에서 광접여가 '공자'를 만났다는 같은 에피소드에 조금 변한 노래다. 『논어』에 비해 좀 더 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붕새여, 붕새여, 어째서 네 덕이 약해졌느냐. 앞날은 기대할 수 없고 지난날은 좇을 수가 없다.”
상상할 수 있다. 전국 시대 식자라고 스스로를 일컫는 사람이라면 필독서였을 『논어』를 읽고 또 읽었을 장자를! 사후에 정리하니 쓴 책이 다섯 수레가 넘었다는 혜시의 논리 정연한 주장을 날카롭게 부순 위대한 지적 능력과 변증의 능력, 비상한 시적 능력, 그리고 샘솟는 아이디어를 가진 특별한 개성의 존재였을 ‘장자’에게도 ‘공자’는 분명 위대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체감하는 현실에서 인간은 너무나 ‘위험’ 하고 ‘하찮았다.’ ‘공자’처럼 배우기를 좋아했던 인간 ‘장주’가 사유해낸 그의 세계관으로는 ‘공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장자’는 눈을 감았다. 생각을 멈추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눈을 뜬 ‘장자’는 붓을 들었다. 그의 길을(‘공자’의 길) 따라갈 수 없다면 다른 길을 가리라. 그럼에도 ‘장자’가 걸어간 길에서 ‘공자’의 그늘은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비루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내는 목표는 같았기에! 그리하여 추측해 보건대 「장자」 ‘인간세’는 어쩌면 인간 ‘장주’의 『논어』에 바치는 ‘오마쥬’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