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방법과 방향에 대한 고민

by 김준식

교육의 방법과 방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있어왔다.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 다양하고 새로운 교육방법과 방향을 항상 배우고 익혀야 할 책무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게으르고 또 무지해서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이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특정의 주제에 대한 논리적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학습한다는 것은 이상적인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많다. 뿐만 아니라 잘 설계된 논리적인 훈련을 통해 습득되는 지식은 단순히 암기만으로 획득된 지식과는 그 유용성과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배움의 여러 종류와 방식은, 아이들의 성장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동시에 그러한 방향을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의 방법과 방향의 시도에는 늘 선결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다. 이 선결조건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한 교육방법이나 방향성의 무게와 실행의 여건 조성에 가려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여러 가지 선결요건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욕구와 의지, 그리고 이러한 교육방법 및 방향의 주체인 아이들의 환경적 문화적 여건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여건은 상대적으로 매우 심한 편차를 가지는 특성이 있다.



해방 이후 이 땅의 교육 당국과 전문가들 매우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대단히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로 정책이나 학설들을 학교 현장에 적용하려 했지만, 그 이론의 대부분은 앞서 말한 선결요건의 다양성을 정책 실행의 단계에서 고려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교육 현장은 늘 교육방법과 방향들의 시험장이 되고 말았다.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특정 교육방법이 어떤 나라에서는 노벨상을 만드는 위대한 방법 또는 방향이라고 해도 그 실행에 있어 충분한 선결요건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극단적으로 아이들을 학습부진 혹은 부적응으로도 만들 수 있다. 이미 외국에서 검증된 뛰어난 교육방식이나 방향이 우리 아이들의 교육적 상황을 절대적으로 풍성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매우 안일한 생각일 수 있다.



즉, 특정한 교육방법이나 방향에 기초한 교육활동이 모든 경우에 교육적 효과가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에 가깝다.



지난 시절 학교 현장에서 유행처럼 이루어졌던 각종의 교육방법과 방향에 얼마나 많은 교사와 학생들이 희생양이 되었던가. 교육당국에서는 자신들이 개발했거나 교육 선진 국가에서 수입한 다양한 교육방법을 널리 실행시키기 위해 교사들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했고, 또 여전히 부여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나름 멋진 교육방법과 방향들을 시시껄렁한 유행가 가사로 전락시킨다는 것을 교육당국은 어쩌면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 어찌해야 교육의 변혁을 꾀할 수 있을 것인가?



감히 생각건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을 교육하려는 방법과 방향에서 불편한 ‘욕망’을 제거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욕망’이란 교육당국 혹은 전문가의 방법대로, 그들이 주장한 방향대로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즉, 목표와 성과에 대한 집착이다.



또 다른 ‘욕망’은 현장에서 그러한 교육방법과 방향을 시도하면서 그 성과를 위해 뿌려지는 반대급부이다. 이러한 ‘욕망’이 개입된 교육방법이나 방향은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것일 수 없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해방 후 지난 70여 년의 교육이 그것을 웅변해주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에게 다가온 그 많은 교육방법과 방향들은 교육당국의 근시적 성과주의와 몇 개의 단체들 또는 몇 명의 학자들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유행시킨 형편없는 유행가 몇 줄일지도 모른다.


http://www.dand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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