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내가 살던 곳 포교당(사찰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아 붙인 이름이다.)에 새로운 스님 세 분이 오셨다. 세 분 스님은 각각 법랍(출가한 햇수-하안거 숫자로 헤아림)은 달랐으나 아주 청정하고 엄격한 수행자들이셨다.
내가 살던 조그만 농촌 마을 사찰의 분위기(이를테면 무당들의 기도당 같은)를 완전히 일신하시고 심지어 禪房 같은 분위기를 만드셨다. 그저 복이나 비는 장소로 알고 절에 나가시던 동네 보살(아주머니, 할머니)들은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시지 못하고 발길을 끊으셨다.
하지만 스님들은 아이들을 절로 불러들이셨고 당시 우리 동네 초등학교 아이들 중 상당수가 교회를 다니다가(먹을 것을 준 탓에) 절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 뒤 6~7년 동안 이 3분의 스님들은 내가 살던 곳을 어린이 불교의 성지로 만드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이 불교의 성공사례를 알기 위해 찾아왔다.
그 사이 나는 이 세 분의 스님들에게 청정한 불교의 진리를 배우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 이들의 청정한 禪風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불교학생회 회장으로 봉사하기도 했고 졸업 무렵에는 잠시나마 행자 생활도 했다.
내가 대학 2학년 때, 이 세 분의 스님들은 아주 성황을 이루었던 어린이 불교의 성지를 뒤로하고 홀연히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한 분은 인도로 유학을 떠나셨고, 한 분은 스리랑카로 가셨다. 또 한 분은 조계종 승가대학원으로 가셨다. 자연스럽게 나와의 인연도 그렇게 약해졌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연락도 없이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내 나이 50대 중반에 세 분의 스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된다. 인도 유학을 가신 스님은 인도 유학을 마치고 부처의 초기경전 ‘니까야’ 번역을 들고 대중 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지금은 지리산 자락 사찰에서 잠시 의탁하고 계신다는 소문을 들었다. 또 한 분은 불교 선학원 원장을 하시다가 물러나시고 이제는 남도 사찰의 선방에 계시며 여전히 수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한 분은 스리랑카에서 돌아오셔서 충정도 어디쯤 선방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세 분 스님은 여러 가지 매체와 글을 통해 현재 대한 불교를 통렬히 비판하고 백척간두 진일보의 절실한 생각을 수행의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수행이 사라진 불교는 이미 종교적 순 기능을 상실한 것이라는 것이 이분들의 생각인 것이다.
범 우주적 사건이었던 부처께서 오신 오늘, 욕망을 가득 담은 허접한 플라스틱 등을 보니 청정 수행자 이 세 분 스님이 생각난다. 여전히 雲水衲子로 청정한 선풍을 이어가고 계시는 세 분의 스님 소식을 바람결에 들으며 1600년째 어찌어찌 유지되고 있는 위태로운 한국 불교를 본다.